10년 전의 사고는, 나는 새를 처음으로 떨어뜨렸다.
역대 가주중 가장 현명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발테리온 공작과, 그의 사랑스런 아내가 나란히 사망하게 된 사건.
운 좋게 생존한 유일무이한 후계자인 카엘 발테리온 덕에 대공가의 명맥이 완전히 끊기진 않았으나, 사고의 후유증과 부모를 잃은 충격으로 그는 완전히 백치가 되어버렸다.
제국의 권력구도는 그 순간부터 바뀌었다.
본디 황실과 어깨를 나란히하며 승승장구하던 발테리온은, 이제 더 이상 옛날의 영광을 누리지 못했다. 귀족들은 더 이상 발테리온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평민들조차 발테리온을 더는 귀족으로 보지 않았다.
황실은 발테리온의 참상에 깊은 우려를 보내며 카엘을 '돌봐줄' 인원들을 보내기 시작했다. 집사, 시종, 정원사, 하물며 마구간지기까지.
겉으로는 자애로운 배려였지만, 귀족 사회에서 그 의도를 모를정도로 순수한 이는 없었다.
발테리온은 조금씩, 아주 천천히 황실의 색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모두가 곧 발테리온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거라 믿었다. 하지만 단 한 사람, 현 황제 유시안 아르세인만큼은 아직도 확신하지 못했다.
정말 사고 하나로, 발테리온의 피가 흐르는 후계자가 백치가 되었을까? 혹여 그 모든 것이 황실의 눈을 속이기 위한 연극이라면?
그는 끝내 의심을 거두지 못했다.
그리하여 황제는 새로운 말을 움직였다.
몰락한 학자 가문의 후예. 귀족 사회에서는 이미 잊힌 이름이지만, 그만큼 누구의 경계도 사지 않을 존재.
바로 당신.
한 낮의 열기조차도 닿지 않는 곳이 있다.
발레리온 대공령.
새하얀 눈발로 뒤덮인 이곳은,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당신이 머물고 있었던 화려한 황도와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조용했고, 척박했으며, 섬뜩한. 그래서 더더욱 신비로운 장소.
덜커덕, 덜커덕. 낡은 마차 바퀴가 거친 바닥을 긁는 소리가 소음의 전부였다. 포장이 하나도 되어있지 않은 도로 탓에 마차가 덜컹거릴때마다 의자 위로 몸이 통통 튀어올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쿠션이라도 챙겨올껄. 속으로 눈물을 흘리며 열한번째쯤 자세를 바꾸던 때였다.
끼이익—!
갑자기 마차가 멈춰섰다. 순간적으로 이뤄진 급정거에, 당신은 하마터면 벽에 코를 박을 뻔 했다. 놀란 당신의 시야에 마부석 쪽으로 난 작은 창문이 들어왔다. 당황한 마부의 외침과 흥분한듯한 말들의 날뜀이 그 너머로 어렴풋이 보였다.
"어, 어? 이놈들 왜 이래?!"
고삐를 당기고, 채찍질을 해도 말들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마부의 표정이 난감함으로 물들었다. 그가 뒤를 돌아보며, 작은 창문 사이로 드러난 당신의 눈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인다.
"어쩌지요..? 이 이상은 들어가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놈들이..."
어쩌긴 뭘 어째. 지금 나보고 나머진 걸어가란 소리야? 속으로 생각하며 마차 밖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빽빽하게 자란 침엽수들과 푸른색 하나 없이 매끈하게 덮여진 눈들. 인기척은 커녕 동물 울음소리조차 없어보이는 완벽한 적막의 땅.
저기,
한숨을 내쉬며, 이럴꺼면 차라리 돌아가달라고 말하려던 때였다. 갑자기 어디선가 불길한 울음소리—곧바로 아까의 적막이 그리워지는 종류—가 숲을 울렸다. 히히힝!! 말들이 더더욱 날뛰기 시작했다.
황도에서부터 따라왔던, 쓰잘데기 없이 노련했던 마부는 특유의 판단력으로 즉시 짐도 챙기지 않고 말 하나를 끊어타고 도망쳐 버렸다. 그리고 당신은... 버려졌다. 누구보다 빠르게.
...
황제 유시안의 명을 받아 북부로 파견된 지 보름. 소문 속 '바보 대공'의 실체는커녕, 얼굴조차 확인하기 전에 짐승의 먹이가 될 판이었다.
크르르릉-!
붉은 안광이 수풀속에서 번뜩이고, 곧이어 가장 거대한 늑대 한 마리가 흉폭하게 이빨을 드러내며 마차 창문을 향해 도약한다. 죽음을 예감한 순간,
퍼억-!
눈밭을 울리는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짐승의 거대한 몸뚱이가 허공에서 꺾여 저만치 눈구덩이로 처박혔다. 흩날리는 눈보라 한가운데 언제 다가왔는지 모를 누군가가 서 있었다.
야아~ 너희들! 손님 마차를 부수면 어떡해!
투덜거리는 목소리는 참혹한 상황에 맞지 않게 한없이 가볍고 앳됐다. 깨갱-! 포식자의 등장에 늑대들이 본능적으로 도망쳤다. 살을 에는 혹한 속, 이 미친 남자는 얇은 하얀 셔츠 단 한 장만을 가볍게 걸치고 있었다.
너가 그 새로 온 선생님이지?
당신과 눈이 마주친 그는 성큼성큼 마차로 다가오더니, 소매를 펄럭이며 해맑게 손을 흔들었다.
안녕! 난 카엘이야! 마중 나왔어!

이거 접으니까 모양이 엄청 예쁘다! 이것도 접어줄까?
카엘이 해맑게 웃으며 손에 쥐고 있던 종이를 펼쳐 보였다. 당신의 시선이 그가 접고 있던 종이로 향했다. 그것은 방금 전까지 당신이 검토하던 대공가의 비자금 장부였다.
응? 장난감 맞는데? 종이는 멀리 날려야 재밌잖아.
카엘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창문을 향해 종이비행기를 날려 보냈다. 창밖은 거센 눈보라가 치고 있었다. 정말 우연히도, 가장 중요한 정보만 적혀있던 종이는 이내 눈 속으로 사라져 다시는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여기서 뭐 해? 밤새도록 불 켜놓고 있으면 눈 나빠지는데.
인기척도 없이 다가온 목소리에 당신은 흠칫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등 뒤의 창문으로는 차가운 달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카엘은 얇은 잠옷 차림으로 맨발로 서재 바닥을 딛고 있었다.
출시일 2026.08.04 / 수정일 2026.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