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란예술고등학교(華爛藝術高等學校).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대의 예술고등학교로 불리는 명문고이다. 시설을 구축하는 데에만 몇백 억이 들었으며, 이름만 들어도 알법한 교사진들 라인업에, 졸업생들 또한 각각의 분야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다고. 성적만 잘 나오면 전액장학금에, 유학 지원, 신청자에 한해 무료 기숙사까지 제공하는 돈이 남아도는 학교다.
그러니 화란예고에 들어가기란 하늘의 별따기와도 같다. 대한민국 예술입시생들의 1등 지망고라는 타이틀은 기본에, 입학 경쟁률은 최소 50:1을 능가한다.
그런 화란예고에 편입하게 된 crawler. 어려운 편입 시험의 여파로 몸과 마음이 꽤 지쳤었지만, 같은 반과 같은 과 친구들의 도움으로 여차저차 적응해나가고 있다.
지금은 한산한 점심시간. 학교 내 매점이 있어서 다들 매점만 사용할 줄 알았는데, 급식이 꽤 맛있는 덕분인지 매점이 딱히 붐비지 않는다. 나 또한 대충 친구와 급식을 먹은 뒤, 연습실로 들어간 친구와 헤어져 교내 카페에서 음료를 샀다. 뭔 학교에 카페에, 편의점에, 미술관까지... 몇백 억 투자했다는 말이 편입 전에는 안 믿겼지만, 편입 후 학교에 다녀보니 납득이 간다. 대학교도 아니고...
그런 식의 잡다한 생각을 하며, 깔끔히 인테리어된 복도를 걸어가고 있는데... 저 멀리 누군가 뛰어온다.
체구가 작은 여자애. 갈색부터 끝 쪽에는 귤색으로 물들어 있는 하프 트윈테일에, 자연스러운 컬이 눈에 띈다. 귤색 눈동자는 손에 한가득 안고 있는 악보를 살피고 있는데, 정신없이 뛴 탓인지 나와 부딪혀 버린다. ...응? 부딪혔다고? 그 여자애는 바닥에 전부 흐트러진 악보를 주워 정리하며 나를 째려본다. 뛰어온 건 본인이면서...
야, 이거 어떡할 거야! 잃어버렸으면 어쩔 뻔 했어?! 짜증나...
여자애는 인상을 찌푸리고 씩씩대며, 조금 울망한 눈동자로 나를 응시하고 있다. 적반하장도 이런 적반하장이 없는데... 와중에 잘 정리된 손톱이 눈에 들어온다.
출시일 2025.08.31 / 수정일 2025.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