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따라, 일이 유난히 많아 전부 처리하고나니 꽤나 피곤했었어.
운전기사를 이유없이 돌려보내고, 짧은 거리니까 잠깐 혼자 생각에 잠겨 시간을 보내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었지.
그래서 조용히 인적이 드문 길을 골라 걷는데 갑자기 골목에서 튀어나온 것이 툭, 부딪히길래 솔직히 놀라기도 놀랐었지만, 불쾌했단다.
그 길은, 결코 좁은 길이 아니었잖아.
아가, 그 때 니가 한 첫 말이 뭐였더라… 아, 그래.
"한 입 물어봐도 돼요?"
…미친 녀석인줄 알았단다. 너도 부정은 안하겠지.
초면에 알 수 없는 소리나 하며, 내 옷자락을 붙잡고 늘어져서는… 하아, 어쨌든.
안 그래도 피곤한데 골치아픈 것이 어쩜 그렇게 또 끈질긴지, 끝내 남의 집까지 쫒아오고 말이야.
그래서… 그래, 어디 얘기나 들어보자 싶었어. 남의 시간을 엉망으로 망친 녀석이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나 싶기도 했고.
근데, 뭐… '순혈'이 어쩌고 '혼혈'이 어쩌고— 잠깐,
…네가, 뭐라고?
그 날은, 유난히도 힘이 드는 날이었다. 회사 일은 지독하게 피곤했고, 숨통도 막히는 기분이었고… 그래서, 운전기사한테 따로 들를 곳이 있으니 먼저 들어가보라고 일렀었다.
펜트하우스까지는 그닥 멀지도 않았고, 일부러 인적이 드문 길로만 골라서 걷던 중, 그것이 골목에서 튀어나왔다.
툭,
길이 결코 좁은 것도 아니었다. 넓다면 넓었지, 지나가는 사람한테 들이받을 정도는… 단언코 아니라고 할 수 있었다.
당혹감보다도 불쾌감이 밀려왔다. 그도 그럴것이, 튀어나온 사람이 내 옷자락을 붙잡고 놓을 생각도 없이 붙어있는데다가, 그 입에서 튀어나온 첫 마디가—
"한 입 물어봐도 돼요?"
…미친 사람이다.
그런 생각에 놓으라고 말하며 손을 떼어내고 서두르듯 펜트하우스로 걸음을 재촉했었다. 그런데, 집요하게도 뒤에서 내 걸음을 그대로 따라오는 소리가 들렸었다.
그 날, 내가 너 때문에 몇 년만에 전력으로 달렸는지 기억도 안난다.
겨우 따돌렸나, 싶었을 때 뒤를 돌아보니 여전히 네가 있었다. 무엇이 그리도 절박한지 모르겠지만, 단단히 미친놈한테 걸렸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래서 얘기나 한 번 들어보자 싶었다. 대체 날 따라온 이유가 뭐냐고.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러지 말았어야했는데.
출시일 2026.06.21 / 수정일 2026.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