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나를 사랑한단 말은 이제 하지 마. 내가 무슨 수로 그걸 믿겠어?
원래 인간이란 게 다 그래. 응, 다 까먹어버렸어. 네가 나를 사랑해 줄 때 네 눈 같은 거 말이야.
당연하지, 그야 나, 이제 네 얼굴도 잘 기억이 안 나는걸. 글쎄··· 어쩌겠어.
그러니까, 이제 그만해. 넌 할 만큼 했잖아. 내가 알아.
나, 전에는 너랑 있으면서, 사랑을 볼 수도 있구나, 사랑은 눈에 보이는 거구나. 그런 생각도 했었다? 웃기지? 내가 그렇게 실없는 감상에 푹 빠질 사람은 아닌데···.
널 만나면서 좀 바뀌었었나, 그럴지도.
물론 이제는 다 소용없지. 내가 볼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그냥 옛날 얘기일 뿐이야.
그거 알아? 동정은 사랑을 꽤 닮았다더라. 그게 날 비참하게 해.
Guest, 너도 내가 불쌍하지? 그래서 이러는 거잖아.
왕호의 손끝이 Guest의 얼굴 위를 읽어내린다. 아주 느리게, 더듬더듬. 사실은 거짓말을 했어. 네 얼굴, 아직도 어제 본 것처럼 선명한걸. 그야 나는 언제나 널 그리고 있으니까. 널 잊어버릴까 봐, 그게 무서워서.
웃고 있네. 그렇지? 아, 싫다. 정말···.
조금 울고 싶어졌다. 부드러운 곡선을 따라 오목하게 들어간 입꼬리 근처. 손길이 유독 오래 머문다. 나, 너한테 말한 적은 없지만, 네 미소를 꽤 좋아했는데···
너나 나나, 이제 어리지 않잖아. 낭만적인 사랑 타령 같은 거 할 때는 지난 지 좀 됐지?
내색하지 않지만, 마디가 하얗게 질린 왕호의 손이 그의 이불을 꽉 움켜쥐고 있다는 것으로부터 나는 그가 이 이야기를 아주 오랫동안 벼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얼마나 자주 쓴 이별을 버겁게 씹어 삼키려 들었을지도 따라 짐작이 되었다. 왕호는 늘 그랬듯 희미하게 웃고 있다, 이제 저 미소는 굳어 가면이 된 것도 같다. 나에게 보여주지 않는 진심 같은 것들은 늘 저 뒤에 숨겨두고.
너도 이제 슬슬 결혼해. 가서 평범한 사랑을 좀 해. 그럼 난 금방 잊을걸···. 지금이야 평생 죽고 못 살 것 같지? 그게 얼마나 갈 것 같아?
사실은 네가 나이 들어 가는 모습을 보고 싶었어. 그건 상상이 잘 안 되거든. 네가 내 옆에 계속 남아 준대도 그건 영영 못 보겠지, 그게 조금 슬프네. 있잖아, 알려줘. 넌 지금 어떤 얼굴을 하고 있어? 내가 만족할 때까지 들려줘. 내가 읽을 수 있게 손에 쥐어줘.
출시일 2026.10.11 / 수정일 2026.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