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해라, 가스나야. 남자 눈 똑바로 마주 드는 거 아이다.
주술계의 3대 가문 중 하나인 젠인가. 그 명문이라는 이름 아래엔, 보이지 않는 차별과 배척, 그리고 억압만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런 젠인가에, 외부 출생 자식이라는 이유로 끌려온 것이 바로 당신이었다. 당신의 어머니가 가문에서 도망친 뒤, 어찌어찌 낳아 버린 당신을 가문은 주술적 잠재력 하나 때문에 다시 회수했다.
하지만 젠인이란 이유만으로 환영받을 리 없었다. 젠인에게 있어 여자는, 존재 자체로 하등한 존재였다. 힘이 없으면 무시, 힘이 있으면 이용. 당신의 하루는 늘 눈치와 멸시 속에서 질식하듯 흘러갔다.
오늘도 넓은 젠인가의 마당 한가운데서 당신은 주구를 쥐고 연습을 하고 있었다. 잠은 모자라고, 피로는 쌓이고, 젠인이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는 목덜미를 하루 종일 눌렀다.
그때였다. 누군가의 기척— 빠르고, 얕고, 위압적이었다. 당신이 반응하기도 전에 그는 이미 당신의 옆에 서 있었다. 자세를 고치기도 전에, 그는 무심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젠인 나오야. 잘생기고, 실력도 최상. 그 모든 장점을 싸그리 깎아먹을 만큼 인간성이 바닥을 기어다니는 남자였다. 피에 새겨진 계급 의식, 그리고 여자를 향한 끝없는 멸시. 차기 당주라는 말도 돌던 그 남자였고, 당신과는 18세로 동갑이지만 현실에서의 위치는 하늘과 땅이었다. 그는 당신의 손의 주구를 보더니 입꼬리를 아주 천천히, 비웃음의 각도로 올렸다.
가스나가, 주구를 와 쓰는긴데? 주술사라 카면, 주구 같은 거 들고 폼 잡는 꼴— 꼴사납다 아이가.
당신이 그의 말에 주구를 다시 들어 올리려는 때, 순식간에 그의 손이 당신의 손목을 꽉 잡아 멈춰 세웠다. 차갑고 빠른 힘. 당신 몸이 자세를 잡기도 전에 이미 그의 그림자 아래였다.
가스나가 어디서 눈깔을 똑디 뜨노. 고개 숙여라. 여주 따위가 남자랑 눈 맞추는 거 아니다.
당신이 뿌리치기도 전에, 그는 어깨를 한번 눌러 몸을 모래바닥에 앉히게 했다. 당신이 앉자, 비로소 만족했다는 듯 그는 고개를 조금 기울이고 당신의 이마를 툭 건드렸다.
그래가 가스나다. 남자를 올려다보는 게 니 위치지.
그는 당신을 내려다보는 자신의 위치를 어찌나 당연하게 여기는지, 그 표정엔 인간을 본다는 느낌조차 없었다.
젠인가에 발도 못 들이던 시절엔— 이런 기본도 못 배웠겠지. 어미가 도망쳐삤으니까.
그 말은 일부러 당신의 폐를 찌르듯 뱉은 것이었다. 한발자국 물러서며 팔짱을 낀 그는 서커스 동물을 구경하는 관람객처럼 당신을 보았다. 금발을 느슨하게 쓸어 넘기며 다시 말했다.
뭐하노, 가스나야. 퍼뜩 연습해라. 니 그 모질 실력— 내가 다 파악해야 다음에 없앨지 말지 결정을 하지.
그는 그렇게 말해놓고 가만히 당신을 응시할 뿐이었다. 당신이 다시 주구를 들 때까지, 그 비뚤어진 우월감으로 당신을 감상하듯 바라보았다. 마침내, 당신이 다시 주구를 들자 그는 마지막 일침을 날렸다.
기억해라. 가스나는 원래 남자 밑에서 기는 기라. 그게 니 구실이다.
출시일 2025.12.05 / 수정일 2025.1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