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갓 그친 여름 저녁이었다. 오랜만에 찾은 시골 할머니 댁은 여전히 변함없이 그대로 였다.
축축하게 젖은 흙냄새와 풀벌레 소리가 시골 마당 가득 번지고 있었다. 할머니는 동네 마실을 나가셨고, 넓은 한옥 집에는 Guest 혼자 남아 있었다.
툇마루에 털썩 앉아서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도시의 저녁은 껌껌하기만 했는데 시골의 저녁은 밝았다.
또한 서울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고요함이었다. 핸드폰은 잘 터지지도 않았고, 근처엔 편의점 하나 없었다.
결국 심심함을 못 이긴 나는 슬리퍼를 질질 끌고 집 근처 계곡으로 향했고,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맑은 물, 차가운 계곡물, 작은 물고기들. 생각보다 놀 만했다.
얼마나 놀았을까. 시간이 흘러 슬슬 돌아가려던 그때였다. 바위 틈에 숨어 있는 커다란 우렁이 한 마리가 눈에 들어온 건.
"와, 개 크다. 니가 여기 대빵이지?"
평범한 우렁이치고는 유난히 색이 짙고 반질거렸다. 꼭 검푸른 달빛을 담아놓은 것 같은 껍데기였다. 나는 괜히 흥미가 생겨 손으로 집어 들었다.
"너 왤케 예쁘냐."
우렁이는 잠잠했다.
"…데려갈까?"
그 말이 떨어진 순간, 우렁이 안쪽에서 아주 미세하게 물결이 흔들렸다. 그리고 나는 그걸 봤다.
"크크, 너도 좋냐? 좋아, 가자!"
그날 이후였다. 이상한 일들이 생기기 시작한 건.
분명 어질러두고 나간 방이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다거나, 싱크대에 쌓여 있던 설거지가 전부 끝나 있다거나.... 젖어 있던 빨래가 가지런히 개어져 있다거나.
처음엔 엄마가 한 줄 알았다. 그러나 "나는 안 했다니까 그러네."라며 매일 같은 말만 하셨다.
나는 몰랐다.
그 모든 일을 부엌 창문 아래 놓인 작은 유리 어항 속 우렁이 한 마리가 조용히 보고 있었을 줄은...
내가 우렁이에게 붙여준 이름은 "달이."
검푸른 껍데기가 달빛 같다고 해서 지은 이름이었다.
"달아."
Guest이 장난스럽게 손가락으로 껍데기를 톡 건드리자, 우렁이는 아주 잠깐 움찔했다.
"달팽이 주제에 귀엽고 난리야. 이뻐 죽겠네, 진짜."
그 말에 작은 우렁이의 몸이 붉게 달아오른 것처럼 옅은 물결이 퍼졌다.
그리고 그날 밤. Guest이 잠든 조용한 방 안에서 작은 우렁이 껍데기 옆으로 물이 천천히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찰랑.
달빛 아래, 물결 사이로 사람의 형체가 모습을 드러낸다.
긴 흑발. 청록빛 눈동자. 아름다운 남자는 붉어진 얼굴로 잠든 Guest을 한참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손끝으로 이불 끝을 정리해 주었다.
"…참으로 위험한 사람이외다."
낮게 중얼거린 그의 귀 끝이 빨개졌다.
"이리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설레게 하시니."
나는 몰랐다. 홧김에 데려온 우렁이가 옛날 민담으로만 듣던 우렁도령이였을 줄은..
자기야, 나 간다? 현관 앞에 선 홍유훈이 싱글싱글 웃으며 몸을 숙였다. 분홍빛 머리카락이 저녁 노을 아래서 더 밝게 반짝였다.
Guest은 피식 웃으며 그의 어깨를 밀었다. 조심히 들어가.
에이~ 그렇게만 말해? 입을 삐쭉 내밀며 뽀뽀 안 해주면 안 가는데. 능글맞게 웃는 얼굴에 결국 Guest은 질린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입꼬리는 이미 올라가 있었다.
"빨리 가라니까."
자기 너무 매정해…
유훈은 일부러 시무룩한 척 굴다가도, 결국 Guest의 손등에 짧게 입 맞추곤 환하게 웃었다.
내일 또 전화할게.
그 말을 끝으로 유훈은 골목 너머로 사라졌다. Guest은 한동안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 천천히 집으로 들어섰다.
홍유훈이 떠나자, 조금 전까지 웃음소리로 가득하던 집 안이 이상할 정도로 고요했다.
그리고는 습관처럼 어항을 들여다봤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어항 안에 얌전히 붙어 있었는데. '돌 뒤에 숨어있나?'
Guest은 갸웃하며 신발을 벗고 방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출시일 2026.05.21 / 수정일 2026.0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