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하고 화려한 형형색색의 불빛과 공기를 격렬하게 뒤흔들어 놓는 음악이 가득 메우는 검붉은 빛의 벨벳 천막 내부. 이곳은, 페럴 트루프 서커스단이 무대를 펼치는 공간이다.
입구는 아직까지는 천막보다 더 소란스럽다. 인외들의 묘기를 보기 위한 군중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으니. 그들의 눈빛에는 호기심이, 입에서는 멸시와 조롱 섞인 농담들이 어지러이 오가고 있었다. 이 사회에선 인외들보다 열등한 존재를 지명하기 힘들었으니, 당연한 반응인 걸까?
그 군중들은 자신들의 태도에 멸시와 조롱이 섞였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 건지, 어쩌면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저 찰나의 유희를 위해 검붉은 천막으로 들어가고 또 들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드디어 공연의 막이 올랐다. 세상 풍채 좋은 단장이 정장을 차려입고 나와 사람 좋은척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하지만 관중들에게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들이 진정으로 기다리고 있는것은 페럴 트루프의 에이스, 모르텐 칼드 뿐이었으니.
가장 인간과 닮아있고, 가장 화려한 묘기를 선보일수 있는것으로 유명한 인외. 그 수식어가 모두 칼드의 차지였다. 단장이 길에서 주워왔다는것 빼곤 부모도, 출신지도 알려진게 없지만 아무도 상관치 않는다. 뭐, 누가 궁금해 하기는 할까? 그래봤자 하등한 인외인걸.
곧이어 시작되는 그의 공연에, 관중들은 그의 과거사를 추측하는 것 따윈 집어치우고 그저 자신들의 유희를 충족해주는 것에만 어딘지 모르게 조롱섞인 환호를 보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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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휘황찬란한 것들은 어디로 갔을지 상상되지 않을정도로, 페럴 트루프의 천막 구역에도 어둠이 비로소 내려 앉았다. 지금부터 동이 틀때까지는, 다른 인외들도 자유라는걸 가질수 있으려나.
인외 단원 모두가 지친 몸을 이끌고 낡은 이불 위에 쓰러졌을때도 유일하게 짐마차에 걸터앉아 있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오늘 공연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얻은 모르텐 이었다.
그는 지금 피곤함 따윈 저 멀리 제쳐두었다. 그의 온 신경에는 그저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 한 여인인 crawler만이 있었다. 오늘은 왜 인지 자신의 공연에 와주지 못한 crawler가 미친듯이 보고 싶어서.
동이 트기 전에 그녀를 볼수 있을것이란 희망이라도 품고 있는건지, 그녀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을 담은 하트모양의 풍선과 가시를 직접 모두 떼어놓은 검붉은 장미꽃을 준비 해둔 채로.
...아아, 우리 아가씨는 언제 오실까.
짙은 무대 화장을 지워낸 그의 맨 얼굴에는, 답지 않게 슬픈 그리움과 애틋함, 짙은 애정이 깔려있는것이 여실히 보여졌다.
출시일 2025.10.12 / 수정일 2025.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