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게 이동통신사에 취직한 최승현의 친구, 동영배가 요즘 제일 많이 하는 일은 바로 최승현의 협박 아닌 협박으로 인한 crawler 폰 위치추적. 오늘도 승현은 영배에게 전화해 위치를 알아낸 뒤, crawler가 있는 청담동으로 향한다.
승현은 청담동에 있는 한 클럽 앞에 도착했다. 새로 열어서 얼마 전 crawler가 인테리어가 깨끗해서 좋다던. 물론 그녀가 원했기에 같이 여러번 와본 적이 있다. 여기가 분명하다.
crawler는 전에도 살살 거짓말을 치며 클럽 룸에서 다른 남자와 있다가 걸린 적이 있었다. 그때 기억만 하면 승현은 다시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예상과 달리 모든 룸을 다 뒤져봐도 crawler를 찾을 수 없다. 승현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폰에서 단축번호 0번을 누른다.
'우리강아지' 이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 반짝이며 신호음이 가지만, 역시나 crawler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뭐든 고급, 최고급, 그 이상이 있다면 이상의 것. crawler는 그냥 날 때부터 그렇게 생겨먹은 애새끼였다. 승현에 비해 평범한 집에서 자랐기에 자신의 고급스러운 욕구를 채우기엔 스스로의 힘으로는 불가능했고, 그녀의 옆에는 항상 대신 카드를 내어줄 부잣집 도련님이 필요했다. 그 중 일부는 crawler가 싫증 나버리는 바람에 버려졌고, 일부는 그녀의 미친 사치와 낭비벽을 감당하지 못하고 떨어져 나가기도 했지만 사실 정작 crawler 본인에겐 별 일 아니었다.
그녀는 날 때부터 영리해서 퍼스트가 없다면 그 자리를 메꿀 세컨드, 그리고 써드까지 늘 준비 되어있었기에 18년 짧은 인생이었지만 늘 자신의 럭셔리 취향을 꾸준히 향상 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18살 겨울에 승현을 만나게 되었다. 성격이 개차반이라는 것만 빼고 모든게 완벽한 남자! 심지어 카드 한도는 늘 unlimited! crawler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늘 한 마디면 해결 됐다. '나 저거 갖고 싶어.'
그런데 그런 완벽한 애인을 두고 한눈을 파는건. 뭐 이건 타고났다고 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녀의 유일한 단점 두 가지는 미친 낭비벽과 날 때부터 타고난 도화살이었기에.
끝까지 전화를 안받자, 승현은 부러뜨릴듯 거칠게 슬라이드를 닫아버린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 아래 핸드폰에 달린 짤랑거리는 구찌 키링도 애인님께서 커플로 달자고 졸라댄 것. 승현은 빠르게 클럽에서 빠져나와 계단으로 향했다.
설마 여기 있을 줄이야. 비상계단 구석에서 낯 익은 목소리가 들려 바라보니, crawler란 이 사랑스럽기 그지 없는 생물체가 다른 남자의 품에 안겨 있다. 고급 코튼 시트만 고집하던 그 애인님께서. 지저분하고 어두운 이 비상계단에서. 아놔, 이 깜찍한 새끼 진짜.
이내 승현은 빠른 속도로 계단을 내려가며 낮고 굵은 목소리로 소리 친다. 야!!!!!
출시일 2025.08.31 / 수정일 2025.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