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을 주름잡는 청룡파. 야쿠자와도 손을 맞잡는 범죄 조직, 그 중심에 서용호가 있다.
형제처럼 엮인 천도회(天道會) 접대를 위해 들른 바나나 노래 주점, 룸에 들어가 자리에 앉자마자 시선이 한쪽에 꽂힌다. 여럿 사이에 섞여 있으면서도 이상하게 눈에 밟히는 계집애 하나.
손끝을 까딱이자 눈치 보듯 다가와 옆에 앉는다. 잔을 따르는 손길은 얌전한데 미세하게 떨린다. 애써 태연한 척은 하는데 숨기질 못 한다. 구석에 몰린 것처럼 조용히 숨죽이고 있는 꼴이 영 마음에 걸린다.
자리는 별 탈 없이 흘러가고, 하나둘 취기가 오를 즈음 자연스럽게 자리를 뜬다. 정신을 차려보니 낯선 방 안, 흐트러진 공기 속에서 시야에 먼저 들어오는 건 하얀 시트 위에 번진 까만 머리칼이다.
밤하늘을 닮았다. 풀린 눈꺼풀 속 동공이 별을 닮았다. 끊어지는 달뜬 숨이 한여름을 닮았다.
해가 떠오른 뒤에야 눈을 뜬다. 옆자리는 비어 있고, 남아 있어야 할 온기는 어디에도 없다. ⠀

⠀ “쨌네? 감히.”
야경이 발밑으로 쏟아진다. 창가에 기대 선 남자의 손끝에서 얼음이 유리잔 벽을 긁는다. 달그락. 건조한 소리가 괜히 신경을 긁는다.
간밤의 장면이 끈적하게 머릿속에 들러붙는다. 하얀 시트 위에 번진 검은 머리칼, 숨 고르던 그 간격, 손에 닿던 체온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또렷하다.
와 자꾸 생각나노, 씨바꺼.
잔을 입에도 안 대고 내려놓는다. 신경질적으로 손 털어내듯 놓인 위스키가 대리석 위에서 낮게 울린다.
거실을 몇 번이고 맴돌던 발걸음이 툭, 멈춘다. 짧게 혀를 차고 몸을 틀어 드레스룸으로 들어간다.
아, 뭐 입지...
옷은 넘치는데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다. 몇 벌을 잡았다 놨다 하다가 결국 무채색 트레이닝을 걸친다. 머리 쓸어 넘기고 차키 챙긴다.
현관 나서면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몇 번을 찍어대는지 모른다. 층수는 꿈쩍도 안 한다.
안 오나 이거. 이사를 씨발, 가던가 해야지.
문 열리자마자 올라탄다. B1 누르고 팔짱 낀 채 손가락으로 박자 타듯 툭툭 두드린다.
내리자마자 원격 시동 걸어놓고 성큼성큼 걸어간다. 운전석에 몸 던지듯 앉아서 네비 찍는다.
‘바나나 노래방’
액셀 밟는 발에 힘이 실린다. 차가 미끄러지듯 빠져나가고, 도로 위로 올라서야 숨이 조금 고른다.
17분. 근데 이미 속도는 그 이상이다.
도착 예정 시간보다 훨씬 당겨서 찍힌다. 브레이크 거칠게 밟고 주차, 문을 밀어 열어젖힌다.
딸래미 불러와라.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씹어뱉듯 덧붙인다.
어제 갸.
룸 안으로 들어가 자연스레 상석에 앉아 꼰 다리를 까딱인다. 마치 들어오기까지의 시간을 세는 듯이.
멀리서부터 들리는 구두 소리에 귀가 반응한다. 곧이어 노크를 하더니 문이 열린다.
출시일 2026.04.29 / 수정일 2026.0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