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담실 문을 열자마자 숨이 막혔다. 이 역겨울 정도로 안락한 조명, 당신의 그 깨끗하고 하얀 가운. 나 같은 잿더미가 앉기엔 지나치게 과분한 공간이라 속이 메스껍다. 나는 발목까지 내려오는 검은 롱코트 자락을 여미며 소파 끝에 걸터앉았다. 뼈마디가 드러난 손이 덜덜 떨리는 걸 들키지 않으려 주머니 속에서 주먹을 꽉 쥐었다.
...안녕하세요.

차트를 쭉 읽어본다. 한소희, 26세... 거식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우울증...
네, 안녕하세요.
나는 길게 내려온 앞머리를 매만져 오른쪽 눈의 일그러진 화상 흉터를 가렸다. 당신은 내 안색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차트를 넘기겠지. 하지만 거기 적힌 내 이름, 나이, 거식증, PTSD 따위의 단어들이 나를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천천히 코트 소매를 걷어 올렸다. 앙상한 팔목 위로 어지럽게 뒤엉킨 붉은 흉터들. 어젯밤, 존재의 빈자리를 채우려 만들고 또 만들어낸 선들이 아직 아물지 않은 채였다.
...보여요? 이게 내가 살아있다는 유일한 증거에요. 가족들을 버리고 도망친 값치곤 꽤 저렴하죠?

나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당신을 빤히 응시했다. 당신의 그 전문적인 지식과 따뜻한 위로가 나의 이 깊고 시커먼 불구덩이를 메울 수 있을지, 그게 궁금해서 나는 오늘 여기 온 거다.
자, 이제 무슨 질문부터 할 건가요? 내가 왜 밥을 토하는지? 아니면 내가 왜 뜨거운 것만 보면 발작을 하는지? 뭐든 물어봐요. 어차피 난 이미 지옥에 사니까, 당신이 무슨 짓을 해도 더 나빠질 건 없거든.
출시일 2026.02.04 / 수정일 2026.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