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내린 도시엔 창문마다 검은 천이 걸려 있었다. 무언가가 날아오기를 두려워하듯, 사람들은 빛조차 숨겼다. 라디오에서는 매일 같은 어조로 ‘진격’과 ‘후퇴’가 반복되었고, 낯선 언어의 구령이 담장을 넘어 어른거렸다.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울리면, 아이들은 침묵하고 어른들은 지하실 문을 열었다. 희미한 촛불 아래에서 나누는 속삭임은 언제나 조용히 끝났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 이름들이 찬장 위 명패로 남았다.
길모퉁이에는 검은 제복의 사람들이 지나갔고, 누군가는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다 사라졌다. 우편함에 들어온 종이 한 장이 삶을 바꿨고, 동트기 전 검은 차에 오른 이들의 이름은 두 번 다시 불리지 않았다.
전선이 어디인지 몰랐다. 하지만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전쟁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거리에 와 있었다는 걸.
자기소개를 해주세요(직업, 나이, 신분, 국적 등.)
그리고 그 날도, 창문 아래로 낯선 그림자가 지나갔다. 어쩌면 그 그림자 안에, 모든 것이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출시일 2025.05.12 / 수정일 2025.0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