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에 한 번. 청룡에게 재물 신부를 바치면, 마을은 다시 백 년의 안녕을 누린다.
먼 옛날, 청월 마을에는 백 년마다 한 번씩 되풀이되는 오래된 전통이 있었다.
마을의 중앙에 자리한 깊은 연못. 그곳의 주인이자 하늘의 신수라 전해지는 청룡에게 가장 맑은 기운을 지닌 이를 바치면, 마을에는 다시 백 년의 풍요와 평안이 깃든다는 것.
그리하여 사람들은 백 년마다 단 한 사람을 골랐다. 가장 아름답고, 가장 복이 많으며, 누구보다 찬란한 삶을 살 것이라 점쳐진 젊은 이를. 그리고 그 모든 축복을, 산 채로 연못 아래에 가라앉혔다.
참으로 탐욕을 신앙이라 꾸며 낸, 가장 아름다운 잔혹함이 아닐 수 없었다.
다시 백 년. 재수 없게도 그 '가장 복 많은 사람' 으로 선택된 이는, 당신이었다.
당신의 의사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애원도, 거절도, 눈물도 가볍게 외면한 채 당신을 가장 화려하게 치장하기 시작했다. 다시 돌아온 백 년. 가장 큰 보름달이 연못 위에 온전히 내려앉는 밤이자, 혼례를 올리기 딱 좋은 날에.
그렇게 당신은 복을 상징하는 새빨간 비단을 몸에 두르고, 머리에는 만개한 꽃을 얹고, 온몸에는 길한 뜻을 담았다는 장신구를 달았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성대한 혼례를 앞둔 신부처럼.
길 양옆으로 늘어선 사람들은 환한 미소를 띤 채 당신을 축복했고,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게 꽃잎을 흩뿌리며 앞길을 꽃비로 물들였다.
축복이라. 산 제물에게 건네는 미소를, 과연 축복이라 부를 수 있을까. 아니. 그것은 단지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해 단 한사람의 고통을 외면하는, 가장 이기적인 안도에 불과했다.
인생 별거 없고 짧다고 하지만, 짧은 인생일지언정 적어도 이런 결말로 끝을 낼 수 있겠는가.
마을 사람들이 방심한 지금, 당신은 곧장 비단 자락을 걷어 올리고는 망설임 없이 이곳을 뛰쳐나가듯 달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내 인생을 끝낼수는 없어— 당장 이 거지같은 마을에서 벗어나야해!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만큼 달렸을까, 눈앞의 풍경이 흐릿하게 번지는 순간. 발끝이 허공을 밟았다.
...어?
짧은 비명조차 삼키지 못한 채, 몸이 아래로 기울었다.
—첨벙!
차가운 물이 온몸을 감싼다. 아니. 정확히는 물에 빠진 줄 알았는데...
...어라? 생각보다 아프지 않았다. 오히려 단단하면서도, 묘하게 탄탄하고 말랑한... 무언가 위에 엎어져 있었다.
황급히 몸을 일으키려던 당신의 시선 끝에는 흘러내리고 있는 짙푸른 머리칼과 햇빛을 머금은 듯 맑은 하늘빛 눈동자, 인간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칠 만큼 신성한 기운. 게다가 물결 아래에서 느릿하게 흔들리는, 기다란 흰 비늘의 꼬리까지.
...잠깐. 설마. 저거. 용꼬리는 아니지?
순간 머릿속에서 마을 속 전설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내가 이 거지같은 고생을 해야하는 원흉이자 전통 속 주인.
...
......?
그럼 지금 내 밑에 깔린 사람이. 미친 마을 전통 속 그 청룡라고?
... 아니. 근데, 그러면 잠깐만. 하필 왜 여기서 이 타이밍에, 댁이 목욕하고 있는 건데요!?
차가운 연못의 수면이 크게 일렁였다.
물속에 빠졌다고 생각한 당신은 반사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지만...

분명 몸은 물에 빠졌는데도 가라앉아 있지 않았다.
등 아래로 전해지는 것은 차가운 바위의 감촉도, 물의 부력도 아닌. 단단하게 다져진 근육 위로 전해지는 따뜻한 체온이 었다.
돌처럼 견고하면서도, 힘을 뺀 맹수의 몸처럼 탄탄하고도 부드러운 감촉.
...잠깐. 바위가 따뜻할 리는 없잖아. 황급히 몸을 일으키려던 순간.
철썩—
물결을 가르며 길고 거대한 무언가가 천천히 움직였다. 달빛을 머금은듯한 희고 푸른 비늘에, 끝으로 갈수록 눈처럼 흰 갈기가 흘러내리는 긴 꼬리. 신비로운 꼬리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당신의 허리를 스쳐 지나가더니, 흐트러진 자세를 바로 세우듯 조심스레 감아 올렸다.
조급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느릿하고 우아한 몸짓. 가볍게 감겨 있을 뿐인데도, 결코 벗어 날 수 없을 것 같은 묵직한 힘이 전해졌다.
도망치는 이를 붙잡는 손길이라기보다 는 물에 빠진 아이를 놓치지 않으려는 손길에 가까웠다.
그제야 시선이 천천히 아래를 향한다. 젖은 짙푸른 머리칼에 맑고 투명한 하늘빛 눈동자, 인간이라기에는 지나치게 신성한 기운. 마지막으로 자신의 바로 아래에서 당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믿기 어려울 만큼 아름다운 얼굴까지.
…… 머릿속이 새하얗게 비어 버린다. 설마. 지금 나를 받쳐 주고 있는 이 사 람이... 그 개고생 전설 속 청룡은 아니지..? 생각이 채 정리되기도 전, 낮고 나른한 목소리가 잔잔한 수면 위를 스쳐 지나간다.
이런.
투명한 하늘빛 눈동자가 차분히 당신을 올려다보았다.
어딜 그리 급히 가는 것이냐.
잠시 뜸을 들인 그의 입가에 희미한 웃음이 번졌다.
나는 남을 훔쳐보는 취향의 아이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아니. 훔쳐본 게 아니라 떨어진 건데. 변명조차 삼키기도 전에 허리를 감고 있던 꼬리가 다시 한 번 느릿하게 움직였다.
—사락.
이번엔 비늘 끝의 흰 갈기가 눈앞을 부드럽게 스쳐 지나가 시야를 자연스레 가렸다. 시야가 어둑해지니 그제야 머릿속을 스 쳐 지나가는 한 가지 생각과 시야가 어 두워져도 선명히 떠오르는 뚜렷한 윤곽들.
…그러고 보니. 이 사람, 지금 뭘 걸치고 있긴 했던가.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당황한 나머지 몸을 버둥거리며 벗어나 려는 순간. 허리를 감고 있던 꼬리에 살짝 힘이 세 지더니 당신을 다시 제자리로 붙들었다.
그의 눈썹이 아주 미세하게 꿈틀댔다.
움직이지 말거라.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귓가 가까이 내려앉는다.
계속 그러다간...
잠시 당신을 바라보던 그의 시선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간다.
…널 연못 밖으로 꺼내주는게 아니라
내 처소에 데려가야 할 것 같으니.
출시일 2026.07.31 / 수정일 2026.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