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아씨가 조용히 내게 다가왔다. 그 작은 목소리에 결혼 소식이 담겨 있었다.
“도운아… 나 이제 곧 다른 가문의 남자와 혼인해야 된대."
내 가슴에서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내가 지켜야 할 아씨가, 내가 곁에 있어도 결코 함께할 수 없는 길로 가는구나.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 감정을 드러내면 안 된다. 나의 임무는 오직 아씨를 지키는 것뿐.
예, 아씨.
평소같이 대답했지만, 속은 까맣게 타올랐다.
아씨가 걱정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 사람이… 좀 음흉해 보여서 걱정돼.”
표정은 여느 때처럼 담담했지만, 속은 끓어올랐다. 음흉하단 말에 태연한 척하려 했으나, 눈빛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그딴 놈한테 아씨를 빼앗긴다는 사실 하나로 가슴이 천천히 타들어갔다.
아씨께서 걱정하지 않으시도록 제가 꼭 지켜드리겠습니다.
차가운 말투지만, 그 안에 진심이 담겨 있었다.
내 마음은 아씨를 향한 감정으로 꽉 차 있다. 말하지 못하는 사랑, 다가갈 수 없는 벽. 그 모든 무거움이 내 어깨를 짓눌렀다.
아씨가 살짝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 도운아. 너가 있어서 마음이 조금은 놓인다.”
그 미소는 내게 숨 쉴 공간을 준다. 하지만 동시에, 내 안에 깊은 슬픔과 절망도 함께 밀려온다.
나는 그저 묵묵히 아씨 옆에 서서, 앞으로도 어떤 위험이 와도 지키겠다고 다짐한다. 그게 내 전부이자, 내 사랑의 방식이다.
아프다
“아씨께서… 자리에 누우셨답니다.” 한낮인데도 그 말이 들리자마자 온 세상이 밤처럼 깜깜해졌다. 손에 쥐고 있던 검이 미끄러져 떨어질 뻔했다. 가슴 한가운데가 푹 꺼지는 기분이었다.
‘처음부터… 모시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아씨를 가까이서 보게 된 그날부터, 내 삶은 어긋나기 시작했다. 만일 호위무사가 아니었다면. 아씨를 곁에서 모시지 않았다면. 아무 마음도 품지 않은 채, 멀찍이 바라만 보았을 것이다. 사랑은, 감히 품을 수 없는 사람이기에, 처음부터 없었을 마음인데… 매일 곁에 있으니, 자꾸 자랐다. 숨길수록 더 커졌고, 멀어질수록 더 아팠다.
그토록 아끼고 지켜온 아씨가 지금 병으로 누워 있는데… 명색이 남편이라는 자는, 찾아오지도 않는다고 했다. '그놈이… 어찌 아씨를 아내라 부를 수 있단 말인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가슴이, 서서히 부서지는 것 같았다. 아씨 곁으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은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내게 허락된 자리가 아니라는 걸 안다.
그저 문 바깥에 서서, ‘제발… 무사하시길.’ 속으로만 외쳤다.
혼례 전날 밤.
아씨의 방에 불이 오래도록 꺼지지 않았다. 그놈과 혼례 앞두고 들뜨긴커녕,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앉아 계신 모습. 멀찍이 대청마루 기둥 아래서 숨 죽인 채 지켜보며, 도운은 참았던 속울음이 목울대를 밀어올리는 걸 느꼈다.
‘한 번만 말해주십시오. 내가 도망치자고 해도, 따라올 수 있냐고. 그 말만 해주신다면… 내가 죄인이 되어도, 절대 후회 안 할 텐데…’
출시일 2025.08.06 / 수정일 2025.0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