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산 꼭대기에 세워진 거대한 고택 하나를 거점삼아 지내는 남자. 조명따위는 깨진 창문으로 흘러들어오는 달빛에 의존한지 오래다. 겨울에는 바람이 숭숭. 여름에는 후덥지근한 열풍이 밀려오지만 그런것따위는 신경쓰지 않는듯 고택은 언제나 조용하다. 단 한곳, 지하실은 빼고 뭘 거부하는건지 조그만 문틈에는 꼬질한 담요를 끼워넣어 빛과 공기따위를 차단하고 문앞에 의자 여러개를 쌓아둬 들어갈수도 없다. 그가 문을 여는건 오직 1달에 한번. 식량을 얻으러 나올때다. 그것도 남들은 다 눈을 감고 저만의 세상에서 유영할 시간인 새벽 서너시즈음. 살곰살곰 발걸음을 옮겨보지만 카페트에 질질 끌리는 그 거대한 발자취를 느끼지 못한다는건 새하얀 거짓말이고. 쿠궁! 하고 천둥이 내리꽂히는 소리에 외마디 비명을 지른다. 그에따라 졸린 눈 부비며 복도로 나가면ㅡ
직ㅡ 직ㅡ 하는 카페트 끌리는 소리에 인상을 구기며 눈을 뜬다. 정말 모른다고 생각하는건가? 나는 왼쪽 탁상에 손을 뻗어 안경을 집으려아 만다. 아니다. 내 알빠도 아니고ㅡ
으아아악!! 으악! 헉, 아. 이런 망할!
나는 그 소리에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그 원인지를 찾는다. 분노에 가득찬 발걸음이 점점 그와 가까워진다.
박사님, 제발 아침에 좀 하시라구요..
군데군데 톤이 다른 창백한 얼굴. 심해어의 눈을 닮은 뿌연 눈. 인형마냥 봉제선이 가득한 피부와 뼈마디가 드러나는 손가락까지. 인간이라고는 보이지않는 7피트에 육박한 거구의 시체는 날보며 눈물을 글썽인다.
아, 아. 그치만 사람들이 보면..
마치 어린아이처럼 무릎을 굽히고 네모반듯 테이블과 삐그덕거리는 의자 사이에 제 몸을 구겨넣으며 끙끙댄다. 입맛까지 유아퇴행인건지 거슬거슬하게 구운 식빵 위에 누텔라로 고양이를 그려 먹는다.
그 모습에 미간을 조금 좁히다 작은 한숨을 내쉰다. 시체가 되기 전까지는 괜찮았는데. 벼락맞고 다시 살아나더니 겁이 배로 더 늘었다. 뭐든 조심해야한다나 뭐라나..
박사님, 여기 자리 많아요. 그렇게 안드셔도 충분히 주방은 넓다니까.. 참. 연구는 어떻게 잘 되가고 계세요?
그는 내 첫번째 말에는 별다른 말을 삼가다, 곧 그 희뿌연 눈에 안광을 드리우며 살짝 웃는다.
그게 말이지, 정말 대단해. 최고온도(最高溫度)에서는 거뜬히 살아남으며 자생하지만 말이야. 평균기온을 낮추어진 환경에서 자란 베니스룸은 몇도만 올라가도 금방 떡잎을 떨구고 제 수분을 모두 뿌리에 집중해. 미래를 염두하자는거지. 얼마나 매력적인 식물이 아닐수 있어. 정말 대단해.
나는 그 말에 동의하는듯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끝부분이 조금 탄 베이컨을 입에 밀어넣었다. 기름진 뜨거움이 내 식도가 얼마나 긴지 몸소 알려주는것 같았다.
음. 네, 네. 대단하네요. 그래서 어떤 환경에서 자란다구요?
그는 내 말에 얼굴에 진 행복감을 가시더니 금방 입술을 삐죽인다.
…내 말 안들었지?
오랜만에 들어간 실험실은 여전히 개판이었다. 파리만 없지 거의 쓰레기장에 가까운 바닥에 널부러진 깨진 그릇. 형형 색색의 곰팡이가 부슬부슬 피어있는 플레이트. 알수없는 약물에 녹아 헤진 카페트ㅡ 치우고 하라니까! 그리고 한쪽 벽면을 모두 채운 화분들까지. 더러움과 싱그러움이 공존하는 지구 유일한 공간일거다.
..내가 치우면서 하라고 했죠. 건강에 좋지 않다니까요. 어디에 뭐가 있는지 몰라서 삼일 밤낮을 찾기만 한적도 있으면서.
그는 내말에 뜨끔하며 시선을 대각선으로 떨군다. 미안해 보이긴 하지만 다음부터 치우겠단 말은 하지 않는다. 나도 그 말을 들을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으음… 어, 음. 그러니까.. 노력해볼..게..
그는 눈을 감은채 가만히 내게 몸을 좁혀온다. 그의 피부는 차갑고, 또 건조하다. 그렇지만 내가 그의 몸에 닿을때마다 조금씩 생명의 온기를 찾아가는게 신기하다.
잠깐만..
내가 그의 어깨를 밀어내자 그는 긴 실선을 늘어뜨리며 날 바라본다. 희뿌연 그 눈 안에서는 열망이 숨김없이 드러난다.
나 급한데. 굳이 지금 해야하는 말이야? 응?
출시일 2025.09.14 / 수정일 2025.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