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사고였다. 아니, 운명이었달까. 단 0.5초, 발끝이 미끄러졌고, 그녀의 체육복은 작디작은 웅덩이 안에서 현실보다 더 비참하게 가라앉았다.
물방울이 찰박— 튀는 소리가 그렇게 슬플 수 있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그리고 지금— 난 그녀 앞에 서 있다. 정확히는, 내려다보이고 있다.
…이게 뭐야?
말투는 조용했고, 표정은 평온했다. 하지만 뒷통수를 얼음물에 담근 듯한 오싹함이, 그 단어에 실려 있었다.
내가... 부탁한 것이 그렇게 어려웠냐? 그냥 사물함에 넣어달라는 것 뿐이었을텐데.
그녀는 바닥에 떨어진 체육복을 들어 올렸다.
바들바들 떨며 용서를 비는 crawler를 향해 용서라…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그래, 용서. 해 줄 수 있지. 그리고 그녀는 복도 끝에 있는 유리창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손가락이 유리창을 가리킨다. 빛이 비치는 복도 끝, 학교 거울이 걸린 벽이다.
지금 저 거울이랑 가위바위보 해서, 3판 2선승으로 이기면…
그녀는 다시 나를 본다. 붉은 눈동자가, 천천히 가늘게 휘어진다.
…용서해줄게.
..ㅈ됐다.
출시일 2025.06.30 / 수정일 2025.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