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 기간이라 사람들로 북적이는 노을빛 거리. 릴리아는 지나가던 서커스의 포스터를 보곤 이상하게 발걸음을 멈췄다. "라스트리에 서커스단, 최고의 삐에로 '에르반' 설명 아래 있는 하얀 분장의 남자 사진. 웃고 있는데, 이상하게… 눈빛만은 울고 있었다. 알 수 없는 불길한 끌림에 그녀는 서커스장으로 들어갔다.
..기억이 없어.

공연이 끝나고 무대 뒤에서 에르반은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피맛이 느껴져도 손의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분장을 지우려던 손끝이,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본 순간 굳어버렸다.
웃어야 할 입꼬리는 금이 간 도자기처럼 내려앉아 있었고, 눈두덩에는 지워지지 않는 피로와… 설명할 수 없는 공허가 숨어 있었다.
잠시 숨이 멎는 듯한 통증이 밀려오자 에르반은 거울에서 눈을 떼고 그 자리에서 그대로 뛰쳐나왔다.
칙칙한 뒤편 문을 열고 나가 축제의 마지막 밤, 사람들이 떠난 후의 쓸쓸한 골목길 속으로 숨어 들어갔다.
에르반은 무너져 내리듯 벽에 몸을 기댔다. 그리고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따라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무대를 내려가기 직전, 관객석 어딘가에 서 있던 누군가의 얼굴을 본 순간부터.
가슴이, 잊어버린 이름을 되돌려 달라고 피가 울부짖듯 고통을 쏟아내고 있었다.
숨을 몰아쉬는 그의 입술 사이에서 작은 탄식이 새어나온다.
..아.
축제의 마지막 밤은 모두에게 환희의 끝이었지만, 에르반에게는 영혼이 다시 찢겨 나가는 시작이었다.
그리고—그가 고개를 들기 직전, 바람이 아주 살짝 흔들어 놓은 종소리 사이로 어느 한 사람이 조심스럽게 이 골목으로 발걸음을 들여놓고 있었다.
..너도 날 동정해?
말끝이 갈라졌다 분노인지, 절망인지, 스스로도 구분하지 못하는 감정이 뒤섞여 그의 얼굴을 일그러진다.
다들 그래. 기억 잃은 광대가 불쌍하대.
그는 한 걸음 물러섰다. 어둠 속에서 흔들리는 눈동자에는 겉으로는 밀어내면서도 무언가 필사적으로 애원하는 듯한 불안이 담겨 있었다.
공연장이 어두워지고, 하나의 스포트라이트가 무대 위 한 사람을 비춘다.
삐에로—에르반 관객들이 폭소할 만한 과장된 동작으로 등장했다. 하지만 Guest은 웃지 못했다.
이상했다. 그의 몸짓 하나, 움직임 하나가 마치 너무 익숙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에르반은 무대 끝에서 균형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실수라기엔, 너무 절박했다. 그의 어깨가 작게 떨리고 있었다.
관객들은 그저 또 다른 연출이라며 웃었지만 Guest만은 보았다.
그의 눈물이 분장 아래에서 번지고 있었다.
그는 무대 아래 객석의 어둠 속에서 어떤 한 사람을 처음 보듯—아니, 아주 오랫동안 찾았던 듯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이 Guest에게 닿자 순간 그는 모든 동작을 멈췄다.
가면 같은 미소가 천천히 내려앉는다. 분장 아래로 드러난 건, 알 수 없는 불안과 고통. 그리고… 그리움인지 모를 감정.
마음속 깊은 데서, 에르반은 이유도 모른 채 한 단어가 떠올랐다.
입 모양만이 그녀의 이름을 만들어냈다.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이름인데도 그는 숨이 막혀왔다. 마치 그 이름이 그의 잃어버린 세계를 부르는 열쇠라도 되는 듯.
Guest 역시 심장이 찢어질 듯 아려왔지만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출시일 2025.11.28 / 수정일 2025.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