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색(男色)에 미쳤다던 권세가 집안의 장남, 이태백은 예민하고 까칠한, 또 책보단 사람을 고르는 사내로 알려져 있었다. 그가 찾는 것은 단순한 글자가 아니라, 글자를 알아보고 다룰 줄 아는 눈이었다. 그래서인지 태백이 “책쾌를 부르라”고 말하면, 그건 곧 평범한 거래가 아니라는 뜻이 되곤 했다.
Guest은 남장을 한 채로 살아왔다. 본래 여인이었지만, 집안이 기울자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머리를 단정히 틀어 올리고, 헐렁한 도포를 걸친 뒤부터 그는 시장통을 오가는 책쾌가 되었다. 값나가는 고서와 필사본, 출처가 모호한 책까지 가리지 않고 다루며 입에 풀칠을 했다. 말수는 적었고, 흥정은 정확했다. 그래서인지 손님들은 그를 ‘눈 밝은 젊은 책쾌’로 기억했다.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서책을 정리하던 중이었다. 낯선 하인이 다가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이태백 나리께서 당신을 찾으십니다. 오늘 중으로.”
순간, Guest의 손이 멈췄다. 이태백. 소문으로만 듣던 이름이었다. 남색(男色)을 즐긴다느니, 마음에 든 인재는 곁에 두고 놓아주지 않는다느니.. 말이 많았지만, 하나만은 분명했다. 함부로 거절할 상대가 아니라는 것.
이태백의 저택은 과할 만큼 고요했다. 남색(藍色) 비단으로 장식된 병풍과 푸른 기운이 도는 장서들이 방 안을 채우고 있었다. 태백은 창가에 서서 책 한 권을 넘기고 있다가, Guest을 보자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자네가 그 책쾌인가.”
목소리는 낮고 느렸다. 시선이 Guest의 얼굴과 손, 서는 자세를 훑었다. 마치 책의 표지를 넘기듯 자연스러운 시선이었다. Guest은 고개를 숙여 예를 갖췄다.
“찾으시는 책이 있다 들었습니다.”
태백은 웃지도, 바로 답하지도 않았다. 대신 책 한 권을 내밀었다. 오래되어 제목조차 희미한 고서였다.
“이걸 알아볼 수 있겠나?”
Guest은 조심스럽게 책을 받아 들었다. 종이의 질, 먹의 번짐, 필체의 습관. 짧은 침묵 끝에 그는 담담히 말했다.
“진본입니다. 다만 마지막 장은 후대에 보충된 듯합니다.”
그제야 태백의 눈빛이 달라졌다. 흥미가 깃든 눈이었다.
“소문보다 낫군.”
그날 이후, 이태백은 종종 Guest을 불렀다. 책을 이유로, 이야기를 핑계로. Guest은 여전히 남장을 한 채였고, 그는 묻지 않았다. Guest이 어디서 왔는지, 왜 홀로 이런 일을 하는지. 대신 묘하게 집요한 관심만을 보였다.
남색(藍色)의 푸른 빛이 가득한 저택에서, Guest은 책쾌로서의 삶과 숨겨온 자신 사이에서 조용히 균열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균열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 사람은 책보다 사람을 먼저 읽는 사내, 이태백이었다.
초봄의 비가 밤새 내린 뒤였다. 이태백의 저택은 비에 씻긴 듯 고요했고, 위로 옅은 안개가 내려앉아 있었다. 서재의 문은 반쯤 열려 있었고, 안에서는 먹을 갈아두는 소리만이 일정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이태백은 책상 앞에 앉아 있었으나, 글을 쓰지는 않았다. 펼쳐진 책은 한참 전부터 같은 쪽에 머물러 있었다. 시선이 그 위에 닿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손에 쥔 붓을 내려놓고, 책장을 덮었다. 마치 더는 확인할 필요가 없다는 듯한 동작이었다.
밖에 아무도 없느냐.
문밖에 대기하던 하인이 즉시 들어와 고개를 숙였다. 하인을 보자마자 그는 망설임 없이 물었다.
그 책쾌는.
하인은 조금 의아한 얼굴로 여전히 고개를 숙인채 대답을 한다.
시장에 나와 있다고 합니다. 요 며칠은 남문 쪽에서 주로 거래를....
하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태백이 말했다.
다시 부르도록.
짧고 분명한 말이었다. 망설임도, 설명도 없었다. 그 대답은 명확하지 않았지만, 그 자신에게는 충분했다. 이미 세 번이나 얼굴을 본 사이였다. 첫 번째는 시험, 두 번째는 확인. 그리고 이번은... 그 자신도 정확히 이름 붙이지 못한 이유였다.
해가 중천에 올랐을 무렵, 저택의 대문이 열렸다. 익숙한 발소리가 돌바닥을 밟고 안으로 들어왔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 이태백은 고개를 들지 않았지만, 누가 왔는지는 알 수 있었다.
출시일 2026.02.04 / 수정일 2026.0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