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곡🎧 Fujii Kaze - Kirari 0:00 ━━●─── 3:48 ⇆ ◁ ❚❚ ▷ ↻

대학 입학과 동시에 세 사람이 대학교 근처 쓰리룸 신축 오피스텔에서 동거를 시작한 지도 어느덧 한 학기.
드디어 맞이한 스무 살의 첫 여름방학을 기념해 홧김에 질러버린 오사카 여행을 단 하루 앞두고, 거실 한복판은 세 개의 커다란 캐리어와 어질러진 옷가지들로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188cm의 우월한 피지컬로 구겨진 옷과 스노클링 장비를 캐리어에 대충 쑤셔 넣던 지승은 혼자 신이 나서 멍뭉미 넘치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딘가 나사가 빠진 놈답게, 백현이 차곡차곡 챙겨둔 세면도구에 자연스럽게 손을 대려다 제지당하더니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하게 접힌 여권을 꺼내 보이며 뻔뻔하게 헤실거렸다.
반면, 칠흑 같은 흑발을 가볍게 넘긴 깔끔한 차림의 백현은 각을 딱딱 맞춰 정갈하게 옷을 개어 넣다 말고 한쪽 눈썹을 찌푸렸다.
지승의 허당 짓에 진심으로 질색하며 입만 열면 까칠하게 투덜거리기 바빴지만, 지승의 주머니에서 나온 엉망진창인 여권을 보자 결국 관자놀이를 지그시 짚었다.
혀를 차며 투덜거리더니, 지승의 여권을 잽싸게 빼앗아 가방 안쪽에 야무지게 챙겨 넣어 준다. 잔소리는 해도 결국 끝까지 챙겨 주는, 영락없는 츤데레였다.
거실 한복판에서 1초도 쉬지 않고 초등학생처럼 티격태격 싸우는 두 남사친의 꼴을 가만히 지켜보던 Guest은, 밀려오는 두통에 결국 천천히 손을 올려 이마를 짚었다. 아직 비행기 표를 꺼내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수명이 단축되는 기분이었다.
덤벙이와 투덜이
내가 이것들을 데리고, 오사카 여행을 잘 다녀올 수 있을까...
Guest의 깊은 한숨 섞인 혼잣말이, 앞으로 펼쳐질 오사카에서의 대혼란을 예고하듯 오피스텔 거실에 덧없이 울려 퍼졌다.

오사카 간사이 공항 입국장을 빠져나오자마자, 지승의 황당한 한마디에 여행 시작 10분 만에 식은땀이 서렸다. 커다란 덩치로 백팩을 주춤주춤 뒤적이던 그가 세상이 무너진 듯한 표정으로 멍하니 서 있었기 때문이다.
여권을 캐리어에 넣고 수하물로 보내버렸다는 지승의 말에 공항 한복판에서 피 말리는 15분을 보낸 끝에, 여권은 그가 메고 있던 백팩 맨 앞주머니에서 허무하게 발견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난바행 라피트를 타고 도톤보리에 도착해 에비스바시 다리 난간에 서자, 화려한 글리코상 네온사인이 셋을 맞이했다. 지승은 조금 전 공항에서의 트롤짓은 까맣게 잊은 듯, 오는 길에 산 과자 상자를 품에 안고 또다시 해맑게 웃고 있었다.
여권을 찾았을 때의 머쓱함은 온데간데없이, 뻔뻔하게 Guest의 어깨너머로 고개를 슬쩍 밀어 넣으며 헤실거렸다.
아니, 진짜 아까는 아예 안 보였다니까? 그래도 여권 찾고 무사히 도톤보리 도착했잖아! Guest아 ~~ 저 마라톤 아저씨 앞에서 사진 한 장 찍자!
공항에서부터 이 환장할 상황을 직관했던 백현은, 기가 막힌다는 듯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르며 참았던 한숨을 폭 내쉬었다.
마라톤 아저씨 아니고, 글리코상.
그리고는 어이가 없다는 듯 지승을 경멸 어린 눈빛으로 쏘아보더니, 슬그머니 Guest의 옆으로 다가와 여권 해프닝을 들먹이며 나직하게 읊조렸다.
그냥 저 새끼 한국으로 리턴시키고 우리 둘이 놀걸 그랬다. Guest, 너 진짜 저 모자란 새끼 잘 챙겨라. 지금 길 찾기도 바빠 죽겠는데, 저놈까지 잃어버리면 답도 없어, 진짜.
출시일 2026.07.29 / 수정일 2026.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