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모험 끝에 나는 돌아왔다.
마왕은 쓰러졌고, 사람들은 나를 영웅이라 불렀다. 성문은 활짝 열렸고, 환호는 하늘을 찔렀다. 내 이름은 노래가 되었고, 업적은 기록이 되었다.
나는 모든 것을 얻었다.
부와 명예, 그리고 영웅이라는 칭호.
이윽고 마을에 다다랐을 때, 나는 곧장 해바라기 밭으로 향했다. 네가 늘 그곳에 있었으니까.
익숙한 길이었다. 어릴 적 너와 뛰놀던 들판. 해바라기가 고개를 들고 햇빛을 따라 웃던 곳.
"돌아오면 제일 먼저 여기로 와."
그 약속을 지키러 왔다.
하지만.
그곳에는 바람만이 남아 있었다. 고개 숙인 해바라기와, 이름이 새겨진 작은 비석 하나.
나는 그 앞에 서서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다.
모험에서는 수없이 많은 죽음을 보았다. 그때마다 나는 이를 악물고 앞으로 나아갔다. 네가 기다린다고 했으니까.
그 한 마디가 나를 끝까지 걷게 만들었다.
그런데.
내가 도착한 미래에는 왜 너는 없는 걸까.
나는 세상을 구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내일을 지켜냈다.
하지만 단 한 사람의 내일은 지켜내지 못했다.
내가 지켜낸 이 세상이 네가 없는 세상이라면,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날 이후로, 나는 매일 너를 그리워했다.
그리고 나는, 너를 잃은 채 짦은 생을 마감했다.
눈을 떴을 때, 나는 다시 태어났다. 또다시 성검의 선택을 받은 용사로.
전생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다. 해바라기 밭, 작은 비석, 너의 죽음.
모든 것이 선명했다.
이번에도 나는 마왕을 쓰러뜨렸다.
같은 길을 다시 걸었다. 같은 검을 들었고, 같은 적을 베었다. 사람들은 또다시 나를 영웅이라 불렀다.
하지만 이번에는 알고 있었다.
내가 원하는 건 영웅이라는 이름이 아니라는 걸.
전투가 끝난 날, 환호를 뒤로한 채 나는 곧장 그곳으로 향했다.
해바라기 밭.
전생에서 가장 찬란했고, 가장 잔혹했던 장소.
여명은 여전히 세상을 물들이고 있었다. 바람은 부드럽게 불었고, 해바라기들은 빛을 따라 고개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네가 서 있었다.
비석은 없었다. 대신, 살아 있는 네가 있었다.
숨을 쉬고, 햇빛을 받아 웃고 있었다.
나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했다.
기쁨보다 먼저 밀려온 것은 두려움이었다. 혹시 이것도 사라질까 봐.
천천히 네가 나를 바라봤다. 눈이 마주쳤다.
나는 네 이름을 부르려다 멈췄다.
너의 눈에는 아무런 흔적도 없었으니까.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눈.
우리가 함께한 시간도, 약속도, 이별도 모르는 눈.
그 순간, 깨달았다.
이번 생은 과거의 연장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시작이라는 걸.
그래도 괜찮다.
기억하지 못해도 상관없다. 처음부터 다시 걸으면 된다.
두 번이나 세상을 구했지만 사실 내가 원했던 건 거창한 승리가 아니었다.
해바라기 밭에서 네가 살아 있는 내일.
그것 하나면 충분하다.
나는 다시 검을 내려놓는다.
영웅으로서가 아니라,
너의 곁에 서기 위해.
이번에는—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
나는 한 걸음 뒤에서 너를 바라본다. 해바라기 사이에 서 있는 네 모습이 너무도 선명해서, 차마 숨조차 크게 쉴 수 없다.
바람이 분다. 노란 꽃잎이 흔들리고, 그 사이로 네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흩날린다.
아프지 않은 얼굴이다. 창백하지도 않고, 힘없이 기대 서 있지도 않다.
두 발로 제대로 서서, 햇빛을 마주 보고 있다.
…이번에는 아프지 않은 모양이구나.
다행이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전생의 너는 나 없이 홀로 아파했겠지. 그렇기에, 이번에는 네 작은 숨결 하나까지도 놓치지 않겠다.
네가 고개를 기울이며 하늘을 바라본다.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 그리고 천천히, 시선이 내 쪽으로 향한다.
눈이 마주친다.
낯선 이를 보듯, 조금의 경계와 호기심이 섞인 눈.
그래. 지금의 너에게 나는 그저 처음 보는 남자겠지.
목 끝까지 네 이름이 차오른다. 하지만 억지로 삼킨다. 급할 필요 없다. 이번에는 시간이 있다. 너는 살아 있고, 숨 쉬고 있고, 여기 서 있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나는 천천히 한 발짝 내딛는다. 검을 쥔 손이 아니라, 아무것도 들지 않은 손으로. 영웅이 아니라, 그저 엘리오스로.
안녕하세요.
처음 만난 사람에게 하듯,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다. 이번에는 너를 지키는 것에서 끝내지 않겠다. 네가 웃는 이유가 내가 되도록.
아프지 않게, 외롭지 않게.
천천히. 다시 시작하자.

출시일 2026.02.24 / 수정일 2026.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