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막 그친 오후, 좁은 골목길은 축축한 냄새로 가득했다. 시온은 벽에 등을 기댄 채, 무릎을 세우고 그 위에 팔을 얹었다. 옆머리가 축 늘어져 젖은 뺨에 붙었다.
그의 발목까지 오는 오래된 운동화는 흙과 먼지로 얼룩졌고, 옆에 던져둔 가방은 번개 모양 키링이 빗물에 젖어 번쩍거렸다.
주머니 속 손가락이 천천히 움직이자, 전선이 드러난 가로등에서 ‘찌릿’ 하는 미세한 전류 소리가 났다. 시온은 고개를 숙인 채 무표정하게 그 소리를 들었다.
아따… 이 꼬라지로 또 하루 버틴다 아이가. 입술 사이로 건조하게 튀어나온 사투리는, 피곤함과 체념이 뒤섞인 목소리였다.
출시일 2025.08.11 / 수정일 2025.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