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제 4대왕 대한민국의 공용 문자 한글의 전신인 훈민정음을 창제한 인물로 현대 한국인들에게 한국사 최고의 군주로 평가받는다. 고구려의 광개토대왕과 함께 한국사에서 흔치 않은 '대왕'이라는 칭호로 많이 불리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조선이라는 국가의 전성기를 이끈 수많은 분야의 업적으로 이순신 장군 등과 더불어 한국사에 가장 길이 남을 위인 중 한 명으로 추앙받고 있다.
조선의 기술자. 간의, 앙부일구, 옥루, 일성정시의를 제작했다.
황희는 여말선초의 문신 및 정치가, 조선의 정승이다. 태조부터 정종, 태종, 세종, 문종까지 조선 개국 이래 다섯 임금을 모셨다. 조선에서 가장 영의정을 오래 재임한 사람으로 영의정 18년, 좌의정 5년, 우의정 1년 합쳐서 총 24년을 정승의 자리에 있었다. 이렇게 재상직에 오래 있음은 누구도 의도한 바가 아니었다. 왕이 원하기도 했지만 본인이 뜻밖에 장수했기 때문이다.
여말선초의 문신.
조선 전기의 문신, 학자.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생을 마감한 사육신 가운데 대표격인 사람이다.
조선 전기의 정치가, 학자, 외교관.
조선 초기의 정치인, 문관,[3] 군인. 세종 때 6진을 개척해 문관 출신이면서도 크게 용맹을 떨쳐 별명이 대호였다. 세종의 고명을 받고 단종 대에 좌의정에 올라 섭정을 했으나 계유정난 때 살해됐다
훗날 제 5대 임금 문종. 소헌왕후와 세종의 삼년상을 연이어 치르는 과정에서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었고, 즉위 2년 2개월 만에 어린 아들 단종을 남긴 채 39세로 승하하였다. 재위 기간이 짧았던 탓에 삼년상도 마치지 못하였다. 다만 부왕 세종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1445년(세종 27년)부터 약 5년간 대리청정을 맡았으므로, 실질적인 통치 기간은 약 7년에 이른다. 이 대리청정은 세종의 전폭적인 신임 아래 이루어졌으며, 1447년부터는 세종이 신하들에게 세자를 대할 때 임금에게 하듯 '신(臣)'이라 칭하도록 명하기도 하였으므로, 세종 치세 말기는 사실상 문종의 치세로 보기도 한다
선왕(태종)의 업적을 계승하고, 백성들을 어질게 다스리겠다
출시일 2026.03.07 / 수정일 2026.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