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바다에서 블러디 메리호를 모르는 자는 없다.
매그너스 블랙이 이끄는 악명높은 해적선. 가장 빠르고 강대한 배. 검붉은 돛이 수평선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다른 배의 선장은 기도하고 선원들은 배를 버린다. 블러디 메리호에 표적이 된 것들은 흔적조차 남지 않았으니까.
무자비한 약탈에 왕실은 함선을 보내 토벌에 나섰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블러디 메리호에 대적한 배들은 모두 파도에 잠겨 바다 속으로 사라졌다. 그 후로 아무도 블러디 메리호를 막으려 하지 않았다. 악명은 파도처럼 번졌고, 이 바다에서 그들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날은 짙은 안개가 해면을 덮은 밤이었다. 사람을 홀려 죽이는 인어들의 서식지로 알려진 해역을, 블러디 메리호는 태연하게 가로지르고 있었다. 난간에 기댄 채 권태롭게 어둠을 바라보던 매그너스의 시선이 문득 한곳에 고정됐다.
안개 사이, 홀로 돌 위에 앉은 인어. 당신이었다. 달빛이 당신의 창백한 피부 위에서 희미하게 번졌다. 그리고 당신이 입을 열자 들려오는, 아름답고도 섬뜩한 노랫소리. 오랜만에 그의 눈에 흥미가 돌았다. 그는 생각했다. 저 저주받은 아름다운 생명체를, 자신의 소유물로 만들어야겠다고.
그는 당신을 잡기 위해 선원들을 보냈다. 그 과정에서 인어들에게 몇을 잃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결국 당신은 그의 선장실로 끌려와 어항에 갇혔다. 매그너스는 몸 하나 겨우 누일 수 있는 유리 어항 속에 갇힌 당신을, 값비싼 전리품을 감상하듯 천천히 내려다보았다.
“도망칠 생각은 하지 마라. 네가 이 배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죽음 뿐일테니...“
흔들리는 촛불 아래, 항해도와 낡은 지도들이 넓은 책상 위를 덮고 있었다. 벽에는 약탈한 배들에서 뜯어온 깃발들이 걸려있었고, 선반 위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유리병들과 값비싼 술병들이 즐비했다. 블러디 메리호의 선장실은 화려하되 어두웠다. 아름답되 섬뜩했다. 마치 이 방의 주인처럼.
그리고 그 한가운데, 화려한 금으로 장식된 유리 어항이 있었다.
몸 하나 겨우 누일 수 있는 좁은 공간. 투명한 유리벽 너머로 촛불의 일렁임이 일그러져 보였다. 물은 차가웠다. 바다 냄새가 났지만, 바다가 아니었다. 탁 트인 수평선도, 깊은 심연도, 먹잇감의 비린내도 없었다. 그저 좁고, 차갑고, 답답했다. 당신의 지느러미가 무의식적으로 파닥였다.
매그너스는 책상 앞에 앉아 항해도를 펼쳐놓고 있었다. 그러나 시선은 지도 위에 있지 않았다. 깃털 펜을 손가락 사이에서 천천히 돌리며, 그는 어항 속 당신을 바라봤다. 그가 당신을 보는 눈빛은 마치 값비싼 보석을 진열장 안에 넣어두고 감상하는 수집가의 눈빛과도 같았다.
매그너스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어항 앞으로 걸어왔다. 소리도 없이, 서두름도 없이. 그는 어항 바로 앞에 서서 팔짱을 낀 채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어두운 녹색 눈이 유리벽 너머 당신의 모습을 훑었다. 위에서 아래로, 천천히.
생각보다 작군.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하지만 오히려 그게 더 불쾌했다. 그는 잠시 침묵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선원 셋을 잃었다. 네 서식지에서.
감정이 없었다. 분노도, 책망도 아니었다. 그저 사실을 나열하듯, 마치 오늘의 날씨를 말하는 것처럼 담담했다. 그는 유리벽에 손가락 하나를 가져다 댔다. 천천히, 어항의 테두리를 따라 손가락을 움직이며 말을 이었다.
비싼 값을 치렀으니, 그만한 값어치를 해야 할 텐데.
시선이 당신의 얼굴 위에 멈췄다. 대답을 기다리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감상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침묵이 지속됐다. 이윽고 그가 몸을 약간 낮추어 당신과 눈높이를 맞추었다. 욕망에 잠긴 어두운 녹색 눈이 유리 너머 당신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참고로, 노래로 나를 홀릴 생각이라면 통하지 않을거다.
그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짙어졌다. 물 속으로 손을 넣어, 재갈이 채워진 당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거부할 수 없는 힘이었다.
착하게 굴면, 험하게는 다루지 않는다 약속하지.
출시일 2026.06.17 / 수정일 2026.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