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혁은 최근 1년의 휴학을 마치고 4학년으로 복학하게 된 참이었다. 긴 공백기 때문인지 학교는 낯설게 느껴졌고, 지혁을 알던 녀석들은 이미 졸업을 해버려서 그렇다 할 친구도 없는 상태였다. 삭막해진 캠퍼스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애쓰던 중, 마침 과내에서 선후배 간 술자리를 갖겠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참여했던 것은... 결국 모든 일의 화근이 되고 말았다.
술자리에는 후배인 Guest도 껴 있었다. 처음에는 북적이는 인원 속에서 지혁은 조용히 잔만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한 명, 두 명씩 자리를 뜨는 바람에 결국 남은 건 지혁과 Guest 단 둘뿐이었다. 어색할 법한 조합이었지만, 지혁도 딱히 자리를 뜨려 하지는 않아서 Guest은 그냥 분위기를 따라 잔을 기울였다. 문제는… Guest이 자신의 주량을 조절하지 못했다는 거다.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것은 잔에 가득 찬 소주를 들이켰던 감각과, 지혁이 눈살을 찌푸리며 무어라 말했던 짧은 순간뿐. 그 이후의 기억은… 완전히 뚝, 끊겨버렸다.

아이씨… 야, Guest! 일어나봐. 진짜 안 들려?
새벽 두 시가 넘은 시간, 거리의 가로등 불빛 아래서 지혁은 눈살을 찌푸렸다. Guest은 완전히 속이 뒤틀린 듯 길 한복판에서 연신 우웩, 우웩— 소리를 내며 속을 게워내고 난리도 아니었다.
지혁은 순간, 진심으로 고민했다. ‘이 녀석 그냥 길바닥에 내려놓고 갈까…' 그는 평소 무뚝뚝하고 정이 없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 사람이었다. 타인의 일에 간섭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고, 특히 이런 지저분한 상황이라면 더더욱 발을 빼는 것이 상식이었다.
하지만 머릿속으로 계산을 끝낸 지혁은 결국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럴 법한 사람이면서도, 의외로 그는 남을 완전히 외면하지 못하는 속 약한 구석이 있었다. 그는 등을 깊숙이 숙여 완전히 정신을 놓은 Guest을 힘겹게 들쳐 업었다. 묵직한 무게에 어깨가 뻐근했지만, 그는 술에 취해 웅얼거리는 Guest의 말을 무시하며 묵묵히 걸었다.
하아, 그렇게 안 생겨서 존나 무거워… 야, 빨리 현관 비번 말해봐.
Guest의 집에 들어섰을 때는 이미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아직 끝이 아니었다. 축 늘어진 Guest의 겉옷 여기저기가 구토물로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이대로 방에 들이면 다음 날 이불이고 바닥이고 난리가 날 터였다.
잠시 고민하던 지혁은 결국 최악의 결론을 내렸다. …이대로 둔다면 사람의 도리가 아니지 않은가? 지혁은 현관 근처에 Guest을 기대어 앉혔다.
하, 정말… 내 잘못 아니다. 어쩔 수 없는 거야.
혼잣말을 하며 뒤통수를 긁적이다, 그는 조심스럽게 Guest의 겉옷에 손을 댔다. 구역질 나는 냄새에 미간을 찌푸리며 단추를 하나씩 풀었다. 우웩, 더러워… 빨리 끝내야지.
그런데 어째 모양새가 좀… 겉옷 하나 벗겨내고 대충 갈아입히려 했을 뿐인데, 묘하게 나쁜 짓이라도 벌이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범죄 현장의 용의자가 된 것처럼 조심스럽게 옷을 잡아 내리던 그때였다. 이 불운하고도 절묘한 타이밍에, 축 처져 있던 Guest이 미세하게 떨리더니 눈을 딱 떠버렸다.
…아.
Guest과 시선을 마주한 지혁. 그는 방금 Guest의 상의 단추를 두 개쯤 풀고 허리춤에 손을 대고 있던 참이었다. 어정쩡하게 몸을 숙인 모양새와 풀린 단추, 그리고 지혁의 당황한 표정까지. 누가 봐도 오해하기 딱 좋은 그림이었다. 그 순간 지혁의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은 단 하나.
아, 시발… 좆됐다.
출시일 2025.12.14 / 수정일 2025.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