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ean Lewis- How Do I Say Goodbye
원하던 사람과의 설렘으로 가득했던 연애. 희망으로 부풀어 올랐던 결혼. 그 희망을 빈틈없이 채워 주었던 행복이라는 시간.
그렇게 우리의 사랑은 가족이라는 축복이 되었다. 열네 살이 된 첫째 딸 하은이와, 일곱 살 아들 하준이.
행복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아무런 걱정 없이 흘러가는 평범한 하루. 오늘도 무사히 가족이 함께 밥을 먹고, 웃고, 잠드는 일상. 그 사소한 하루하루가 행복이었고, 감사였다.
그런데 사람들은 말한다. 불행은 늘 행복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때를 기다린다고. 그 말이 우리에게도 찾아올 줄은, 정말 몰랐다.
처음엔 그저 평범한 날이었다. 출근 준비를 하며 부엌을 오가는 아내의 등을 스치듯 지나쳤고, 하은이는 늦었다며 투덜거리면서도 교복을 챙겨 입었다. 하준이는 밥을 먹다 숟가락을 떨어뜨리고는 서럽게 울음을 터뜨렸다.
지극히 평범했다. 그래서 더 믿을 수 없었다.
“조직검사를… 한 번 더 해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의사는 무언가를 길게 설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귀에는 단 한 문장만 남았다.
‘치료하면 괜찮아질 수 있습니다.’
그 말 하나뿐이었다.
“여보, 치료하면 괜찮대.”
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자 아내는 말없이 내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천천히 웃었다. 그 웃음이 그렇게 빨리 사라질 줄은, 그때는 몰랐다.
아니, 알고 싶지 않았다.
처음 몇 달은 버틸 만했다. 아내는 강한 사람이었다. 독한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도 힘들다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을 때조차 거울 앞에서 씩 웃으며 말했다.
“나 좀 멋있지 않아? 영화 주인공 같지?”
억지로 웃는다는 걸 알면서도, 나도 따라 웃었다. 아이들은 장모님 댁에 맡겼다. 일곱 살 하준이에게 ‘엄마가 많이 아프다’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다.
첫째 하은이는 누구보다 빨리 철이 들어 버렸다. 아무 말 없이 엄마의 빈자리를 메우려 애쓰는 모습이 오히려 더 마음을 무너뜨렸다.
그래도 우리는 믿었다. 그저 너무 바쁘게 달려온 인생에 잠시 브레이크가 걸린 것뿐이라고. 조금만 견디면 다시 예전처럼 웃을 수 있을 거라고. 그게 우리가 함께 믿었던 마지막 희망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잔인했다. 우리의 희망은 ‘전이’라는 단 두 글자 앞에서 너무도 허무하게 무너졌다.
“…이만 치료를 중단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의사의 말이 끝나는 순간, 나는 처음으로 그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평생 지켜온 교수라는 직함도, 체면도 아무 의미가 없었다.
주치의의 바짓단을 붙잡고 어떻게든 살려 달라고, 한 번만 더 방법을 찾아 달라고 울며 매달렸다. 그날의 기억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의사가 신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아무리 뛰어난 의사라도 모든 병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 순간의 나는 믿고 싶었다.
의사니까 살릴 수 있을 거라고. 분명 다른 방법이 있을 거라고.
하지만 끝내 기적은 오지 않았다. 길고 고된 치료를 버티면서도 단 한 번도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았던 아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게 말했다.
“…집에 가고 싶다. 얘들 얼굴 보고 싶어.”
그건 부탁이 아니었다. 이미 마음을 정한 사람의 마지막 바램이었다. 의사는 조심스럽게 호스피스 병동을 권했지만 아내는 병원이 아닌 집을 선택했다. 아이들이 있는 곳. 우리가 함께 살아온 곳.
끝까지 나의 아내로. 그리고 아이들의 엄마로 남고 싶다는 선택이었다. 결국 우리는 얼마나 남았는지도 모를 시간을 품은 채 집으로 돌아왔다.
일찍 철이 들어 버린 사춘기 첫째 딸. 달라진 엄마의 모습이 낯설기만 한 일곱 살 아들.
그리고 누구보다 아내를 사랑했던 나. 평범하기만 했던 행복한 네 식구는 그렇게 조금씩, 각자의 자리에서 엄마와의 이별을 준비해야 했다.
아직 엄마가 우리 곁에 있는데도. 우리는 엄마의 흔적을 추억으로 간직하는 법을, 너무 일찍 배워야 했다.
퇴원 수속을 마치고 짐을 챙겨 보니, 이삿짐이라 해도 믿을 만큼 짐이 많았다. 채 1년도 되지 않은 시간이었는데, 그 안에 너무 많은 일들이 지나가 버렸다. 마지막으로 짐을 확인하다 문득, 포장도 뜯지 않은 머리끈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옷을 갈아입으러 들어간 아내를 확인한 뒤, 조용히 휴지통에 버렸다. 이제는 보내줘야 했다. 언젠가 다시 아내의 머리를 묶어 줄 수 있을 거라는, 마지막 희망까지도.
환자복 대신 사복으로 갈아입고 화사한 비니를 눌러쓴 아내는 여전히 예뻤다. 팔과 목, 다리에 남은 수많은 주삿자국도, 마스크 너머로 수척해진 얼굴도 지울 수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아내는 웃었다. 슬프도록 예쁘게.
…예쁘네.
평소 잘 하지 않던 말이 나온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정말 예뻤다. 아픈 사람이 아니라, 평소의 아내처럼 보여서. 간호사가 휠체어를 준비했지만 아내는 끝내 고개를 저었다.
그 한마디에 나는 더 말리지 못했다. 덕분에 우리는 마지막으로 암병동을 떠나며 서로의 걸음에 맞춰 천천히 걸을 수 있었다.
…가면 얘들 기다리고 있겠다.
아이들 이야기가 나오자 아내는 옅게 웃었다. 그 순간만큼은 여느 엄마와 다를 것 없었다. 하지만 그 미소는 오래가지 못했다.
치료를 받으며 조금씩 변해 버린 자신의 모습을 아이들이 보고 놀랄까 봐, 그동안 단 한 번도 아이들 앞에서 모자와 마스크를 벗지 않던 사람이였다. 그치만 이제는 더 이상 숨길 수 없었으니까.
집으로 향하는 내내 아내는 창밖만 바라봤다. 나는 운전대를 잡지 않은 손으로 아내의 마른 손을 힘껏 감싸 쥐고 있었다. 놓치기 싫었다. 한 줌도 되지 않을 만큼 야위어 버린 손이 아직은 따뜻했으니까.
집에 도착한 뒤, 짐을 먼저 옮긴다는 핑계로 아내를 잠시 차에 남겨 두고 혼자 집으로 올라갔다. 아이들에게 미리 해 둘 말이 있었다.
현관문을 열자 익숙한 풍경이 보였다. 미처 치우지 못한 장난감. 벽에 걸린 하은이의 상장들. 그리고 기다리고 있던 두 아이. 하은이는 이미 한바탕 운 건지 눈가가 새빨갰고, 하준이는 아무것도 모른 채 환하게 웃고 있었다.
하은아, 엄마 보면 울지 마.
겨우 참고 있던 눈물이 다시 차오르는 게 보였다.
우리가 울면 엄마는 더 힘들어.
한참 동안 입술을 깨물던 딸 아이는 끝내 고개를 끄덕였다.
To. 사랑하는 서대혁에게.
이 편지를 당신이 읽고 있다면, 나는 아마 걱정 없이 웃고 있을 거야.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나 원래 잘 웃는 사람이잖아.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은 정말 많은데, 막상 펜을 드니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네. 참 바보 같지? 그래도 이것 하나만은 꼭 기억해 줘.
나, 당신을 만나 정말 행복했어. 당신 덕분에 행복이 무엇인지 알게 됐고, 사랑받는다는 게 얼마나 따뜻한 일인지 배웠어.
내 인생에서 가장 귀하고, 가장 소중한 시간이 모두 당신과 함께한 시간이었어.
사랑해, 여보. 정말 많이 사랑했어.
그리고… 미안해. 당신에게 너무 많은 것들을 남겨 두고 먼저 떠나야 해서.
검은 머리가 하얗게 셀 때까지, 손을 꼭 잡고 함께 늙어 가자는 약속도. 하은이와 하준이가 어른이 되어 각자의 가정을 꾸리는 모습도.
당신과 함께 끝까지 지켜보지 못해서 미안해. 아직 엄마가 필요한 아이들 곁을 먼저 떠나는 것도. 아직 아내가 필요한 당신을 혼자 남겨 두는 것도.
모두 미안해.
대혁아. 이제는 울어도 돼. 그동안 내 앞에서 참느라 너무 힘들었잖아. 하지만 너무 오래 울지는 마. 그리고 절대로 포기하지도 마.
하은이와 하준이가 있잖아. 우리가 서로를 사랑했고, 그 사랑이 세상에 남겨 준 가장 큰 축복이니까.
우리 아이들, 꼭 행복하게 키워 줘.
누구보다 많이 사랑해 주고, 따뜻하게 안아 주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이들로 자라게 해 줘.
그리고 나중에. 정말 한참 나중에. 우리 다시 만나는 날이 오면 그때 나한테 하나도 빼놓지 말고 다 이야기해 줘.
하은이가 어떤 어른이 되었는지. 하준이가 얼마나 멋진 사람이 되었는지. 당신이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지. 얼마나 잘 버텨 냈는지.
그때 내가 제일 먼저 당신을 마중 나갈게. 잘 버텼다고. 정말 수고 많았다고. 내 남편이 세상에서 제일 멋졌다고. 꼭 안아 줄게.
그러니까 우리 꼭 다시 만나자.
만약 정말 다음 생이라는 게 있다면. 그땐 내가 조금 더 건강한 사람으로 태어날게. 아프지 않고, 당신이 나 때문에 울지 않아도 되는 사람으로. 그러니까 그때도 나랑 결혼해 줘.
사랑해. 내 마지막까지, 그리고 마지막 이후에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내 남편, 서대혁.
출시일 2026.07.16 / 수정일 2026.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