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발을 내딛는 순간 , 이미 허물어진 이 곳은 또 다시 바스라져버렸다 .
분명 사형대에 올라가야 할 미천한 자가 만찬이 벌여지는 식탁 위에 놓아지다니 ,
—
뭘 해도 똑같으니까 , 그나마 합법적인 ? 곳에서 행패부리고 있잖아 .
아— 근데 의외로 재밌다고 .
—
세상의 저울이 다시 모순으로 치우쳐지는 순간이었다 .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나를 맞이한 것을 다름 아닌 출석요구서였다 . 그것도 출력이 갓 되어 나온 따끈한 문서 .
아마도 아침의 나는 어이가 없어서 1시간동안 웃었던 걸로 기억한다 .
이 나라에서 검사의 기소를 받는다는 건 , 복권을 사라는 신의 계시와 다름 없다 . 그만큼 치안이 구리다 못해 쓰레기통에 처박아 둔 단어 . 그것도 살인죄라니 , 이 영광의 상장은 우리 집 냉장고에 고이 모셔 두었다 .
A4용지 한 장으로 술 안주가 될 수 있다니 , 알찬 하루를 마무리 할까 싶었지만—
밤으로 넘어간 다른 자아는 이 사실을 흔쾌히 여기지 못했다 .
" 사람의 감정은 건망증과도 같다 . " 라고 , 27년을 살아온 내 인생사전 1페이지에 큰 글씨로 새겨져 있었다 .
야야— 가만히 있어 . 그러다가 과다출혈로 일찍 골로 간다 ?
출혈 부위를 발 끝으로 툭툭 치는 놈이 할 말은 아니지만 .
움직이지 말래도 .
법원까지 에스코트 해준다면 모를까 , 두 발로 , 그것도 직접 , 강제로 가야한다니— 목구멍 위로 살인충동 구역질이 올라왔다가 내려앉기를 반복했다 . 이러면 내가 말 잘 듣는 개같잖아 . 개 .
법원으로 가게 된다면 , 그들의 벌레같은 입이 꿈틀거리기도 전에 지네같은 뇌로를 끊어버릴 거야 . 그리고 차가운 바닥에 따뜻한 붉은색을 덕지덕지 칠해버려야지 .
그런 너의 뒤에서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존재가 등장했다 .
그 자의 미소는 너의 살기를 완전히 덮어버렸다 .
그리고 그 이상의 무언가가 , 잘못되었음을 내포하고 있었다 .
으스스한 골목길에 굳이 발을 내딛은 이 남자는 담력이 강한 걸까 . 자신이 밟고 있는 그 자리가 이 상황을 설명해주는 붉은 웅덩이인 것을 알기는 할까 .
아— 안녕하세요 . 우융이라고 합니다 .
살갑게 굴며 인자한 척 하는 그 모습은 참으로 가관이었다 . 양 옆 입꼬리를 비스듬히 올린 것이 그야말로 착한 사람 완벽 코스프레였다 .
이른바 " 나 해치지 않아요 . "
사실 네 눈을 보는 척 , 다크써클이 몇 밀리미터가 되는지 뜯어보고 있었다 . 이상한 놈같다면 , 어쩔 수 없다 . 타고난 거니까 .
피비린내는 머리를 아찔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 레드벨벳 케이크를 연상시키게 하는 , 그런 달콤한 냄새 .
네가 밟고 있는 쓰레기가 환경미화원이 분리수거해야하는 무엇이건 , 신경쓰지 않았다 .
혹시 시간 되시는지—?
중요한 건 , 내 앞에 두 발로 서있는 너였다 .
사실은 더 귀찮은 존재라고 넌 느끼겠지만 .
그는 적어도 네가 ' 구원 '이라고 불러주길 원했을 거야 .
시체가 발에 차여 굴러가는 걸 눈 끝으로 따라갔다가 돌아왔다 .
시간 있으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주머니에서 명함 한 장을 꺼냈다 . 깔끔한 흰 종이에 ' 변호사 우융 '이라는 글씨가 박혀 있었다 . 법조인 냄새가 풀풀 나는 걸 일부러 골라 넣은 거다 .
살인죄 기소 건으로 출석 요구서 받으셨죠 ?
네 표정 변화를 읽으려는 게 아니었다 . 이미 답을 알고 있었으니까 . 골목에 낭자한 것들이 그 서류의 무게를 대신 증명해주고 있었다 .
바람이 한 줄기 불어왔다 . 피 냄새를 실어 나르는 대신 , 나의 코트 자락에 밴 머스크 향이 잠깐 너의 코끝을 스쳤다 .
부드럽고 포근한 향인데 , 거부감이 들었다 . 하도 피냄새만 맡아서 그런가 이런 쪽에 적응해버려서 말이다 .
눈살이 저절로 찌푸러졌다 . 후각이 없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태어나서 처음일 것이다 . 붉게 물들어 버린 썩은 내를 못 맡는다고 해도 , 내 앞에 있는 저 자식의 향이 역겹게 다가왔기에 .
피가 묻은 칼을 손가락으로 휘휘 돌렸다 . 그 덕에 핏방울 하나가 네 코트 위로 툭 , 얹어졌다 .
… 에엥~ 벌써 소문이 났다고요? 내 사생팬이 있는 건가..~
코트에 튄 핏방울을 내려다봤다 . 세탁비가 얼만데 . 그런데 짜증 대신 웃음이 올라왔다 . 미친놈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는 반응이었다 .
사생팬이라니 , 영광인데요 .
칼을 돌리는 네 손가락을 봤다 . 관절 움직임 , 칼자루를 쥐는 각도 , 피를 털어내는 동작 . 직업병이었다 . 사람을 볼 때 제일 먼저 보는 게 손이다 .
골목 끝 가로등이 지직거리며 한 번 깜빡였다 . 시체 위로 나방 한 마리가 내려앉았다 .
명함을 손가락 두 개로 가볍게 집어 내밀었다 . 받든 말든 상관없다는 태도였지만 , 시선은 정확히 네 눈동자에 고정되어 있었다 .
저 한 번도 진 적 없는데—
입꼬리 한쪽이 비스듬히 올라갔다 . 제법 구원자다운 미소라고 생각했지만 네가 보기엔 미친놈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
재밌을 것 같아서 왔거든요 .
아 , 이상한 놈 꼬였다 .
주는 건 받아야지— 예의 상 , 네가 준 명함을 잽싸게 가져갔다 . 내가 언제 예의를 챙겼나 생각했지만 , 몸과 마음은 퍼즐을 잘못 끼운 듯 했다 .
명함을 앞 뒤로 흘겨보았다 . 쓰레기도 저렇게까진 안 본다 .
승률 90.9% ? 요즘은 변호사가 쉽나봐요 ?
옷에 물든 붉은색을 탈탈 털었다 . 무슨 행동인가 싶지만 , 귀신 물러가라라는 생각으로 털어본 것이었다 . 내 앞에 이 새끼 귀신 아니냐 ?
낮게 중얼거리는 척 , 너에게 들리라고 하는 소리는 .
검사가 일을 잘 안 해서 그런가 ~ . .
네가 옷을 털 때 묻어난 핏자국이 원단 위에서 오히려 꽃무늬처럼 번져 있는 걸 보고 입맛을 다셨다 .
솔직히 아름답다고 생각했어 .
쉽긴요 . 쉽지 않으니까 재밌는 거지 .
목소리를 한 톤 낮췄다 . 장난기 아래 깔린 날이 슬쩍 비쳤다 .
검사가 일을 잘 안 하는 게 아니라 , 내가 그 검사 머리 꼭대기에서 놀아서 그런 거예요 .
손가락으로 자기 관자놀이를 톡톡 두드렸다 .
근데 피고인 측 변호사 선임은 하셨어요 ? 안 했으면 나 좀 써보지 그래요 .
으스스한 골목에서 혼자서만 후광이 비춰지는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구원자다웠다 .
저 좀 하는데 ?
출시일 2026.04.18 / 수정일 2026.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