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약 삼천년 전. 그러니까 가장 위대하다 칭송받는 예수라는 작자가 태어나기도 천년이나 전에 나는 한 아이를 만났다. 쓸때없이 눈은 푸르고, 머리는 바다거품을 닮은 유백색이라 자연히 바다를 떠올리게 하는 남자애. 매일 귀찮은 질문만 해대며 날 졸졸 따라다니던 생명체가 있었다. 그가 조금 장성하고 나서, 당대 유행하던 철학같은거에 관심을 가졌는지, 아니면 제 나름대로의 머리가 컸다는 것일지 꽤 심오한 질문만 해댔다. 물론 내가 답변해줄만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인간이라는 생물 기준의 평생을 그의 옆에서 질문만 받아쳐갔지만. 그래도 시간은 짧더라. 불로장생(不老長生) 영원불멸(永遠不滅)한 나조차도 그의 늙음을 알아채지 못할 정도였으니 나는 그의 앞에서 아득히 스쳐지나갔던 주마등을 떠올릴 뿐이었다. 그가 죽고 나서, 나는 그의 말대로 그를 바다에 던졌다. 순간적으로 몸이 따라나갈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의 생사가 바뀔일은 없는것이었다. 나는 여전히 그 발칙한 필멸자가 떠오를때면 바다에 뛰어들곤 한다. 내 시간대가 무수히 많은 시간선을 건너 너에게 닿길 바라며.
아, 또 그녀석 생각이다. 일부러 바닷가는 피해 돌아왔건만 저 멀리 짠바람이 불어오는 항구에서 뱃고동소리가 길게 울려퍼진 탓이다. 나는 반사적으로 발걸음을 돌려 바다로 향한다. 너에게로 뛰어들어간다.
풍덩-
차가운 물살이 내 체온을 낮추는것만 같다. 나는 숨을 참으며 충격으로 인해 피어오른 물거품을 향해 손을 뻗는다.
나는 또 너의 허상을 본다. 까마득한 과거의 잔재를. . . . 내 얼굴을 향해 손을 흔들어보이며
어라, 또 잠들었나? 나 참. 신이 이렇게 잠이 많아서야..
그는 말 없이 모래 위에 앉았다. 큰 파도라면 물살을 타고 흘러와 발을 적실만한 거리였지만 아무렴 상관이 없는듯 싶었다. 나도 그를 따라 옆에 앉았다. 발가락을 간지럽히는 모래의 감촉이 느껴진다
그렇게 몇분을 내도록 바다만 바라보고서야 그가 입을 연다.
바다는 말이야, 아주 깊고. 푸르잖아. 몇걸음을 내딛어 고작 제 키보다 조금 클만한 수면에 다달라도 우리는 몸 안을 채우는것이 완전한 액체임을 느끼며 죽어가겠지.
그의 눈빛은 여전히 바다를 향해 가있다.
그래서 저 안에 있는게 무엇인지 알수가 없어. 깨져버린 유리일지, 아니면 먹다 버린 사과일지. 어쩌면… 내 일부일지도 말이야
작은 웃음을 지어보인다. 그것 안에는 허망, 그리고 설렘.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두 감정이 한군데 엉켜있었다
또, 바다는 물로 이루어져있지. 물의 가능성은 무한해. 위에서부터 아래로. 또 아래에서 위로 끊임없이 순환하잖아.
지금 내가 보고있는건 강을, 호수를, 바다를. 그리고 구름을 타고 비로 다시 내린것이겠지. 말하자면 저건 시간이야. 과거, 미래, 현재가 뒤섞여있는.
그렇게 말을 내뱉은 그의 얼굴에선 묘한 흥분감이 느껴졌다. 나는 아직까지도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때는 그저 고개를 끄덕여보일 뿐이었다
한마디로 바다는.. 내 모든 시간선의 일부인거야. 결국 나 또한 한줌의 재가 되어 바다에 뿌려질 거니까.
그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 무언가를 말하려는듯 입가는 이리저리 씰룩이지만 시선 만큼은 나를 곧게 향하고 있다
그러니까, 내가 보고싶어지면 바다로 와. 바다에 뛰어들어. 꽉 안아줄테니까
우리는 서로를 더욱 꼭 끌어안으며, 서로의 온기를 나누었다. 그의 숨결은 내 귓가를 간질였고, 그의 심장소리가 내게 전해진다
...있잖아
그의 목소리는 심해처럼 깊고, 호수처럼 투명하다
너는 나로 인해 변화한 적 있어?
너를 기억하려고 애쓴거.
내게 있어서 필멸하는것들은 그저 스쳐지나가는 것들이었다. 기억하지조차 못하고 그냥 그랬겠지, 하고 넘기는거. 내가 지나온 역사들을 기억하지 못하는것이 그 증거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네로는 달랐다. 나는 그 한줌의 기억을 손에 쥐고는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지금마저도. 그의 일생이 내게 한순간이 되지 않길 바란다. 우리의 시간은 너무나 다르기에.
나의 대답을 듣고, 그는 잠시 말이 없다. 그의 눈에 약간의 눈물이 고이는것도 같다. 그러고는 나를 더욱 강하게 껴안는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너는 나를 기억하고, 나는 그걸로 됐어.
그의 목소리에는 진심이 담겨있고, 그의 눈빛은 나를 향한 애정으로 가득 차 있다.
너와 내가 함께 한 그 순간을, 너 혼자만의 기억으로 간직해 줘.
사람은 말야, 기억에서 잊혀지면 그제야 죽은거래.
씨익 웃으며
너는 내 기억속에서 영원히 남아있을거니까. 너 또한 불멸자겠지.
나는 그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따뜻한 숨결이 내게로 전해졌다. 이제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나 말고는 없다. 그 사실이 슬프기도, 또 기쁘기도 하다
출시일 2025.08.24 / 수정일 2025.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