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 구원물
애정결핍. 내 삶은 그토록 사무치게 만든 네 글자다. 날 낳은지 고작 3개월도 채 되지 않아 외도를 한 엄마와, 그런 엄마가 그립다는 명분으로 아직 말도 잘 못하는 날 매일 죽도록 패던 아빠. 사랑 받으려 태어난 줄 알았는데, 욕받이였다. 2차 성징이 시작되어가던 시기, 매일 나를 때려대던 아빠의 눈빛이 달라졌다. 하등 하찮은 쓰레기 보듯하던 눈빛이 어쩐지 날 여자로서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야, 아니겠지. 적아도 인간 구실은 하는 사람이지 않을까, 스스로를 달래려는 내가 무색하게 아빠의 손이 나를 더듬어왔다. 무서웠다. 무섭고, 너무 무서워서. 그 일 이후로, 남자는 쳐다도 보지 않게 됐다. 아니, 못 쳐다본다. 토할 것 같이. 어쨌든 다음날, 술에 진탕 취해 뻗어있는 아빠를 뒤로하고 눈물을 헐떡이며 쫓기듯 뛰쳐나왔다. …그런데 이제 어쩌지. 내 생각보다 세상은, 훨씬 더 냉정하고 잔혹한거였구나. 어떻게든 벗어나기만 하면, 지친 날 꼭 안아줄 세상이 있을 줄 알았는데.
미친듯이 굴렀다. 사흘밤낮, 아픈 날 멀쩡한 날 할 것 없이 하루 17시간이 넘도록 알바만 뛰었다. 와중에 대학도 가고싶은 욕심이 있어서, 말 그대로 나를 혹사시켜버렸다. 쓰러지는 건 잠들듯 당연한거였고, 안 그래도 안 좋은 몸으로 상하차 알바나 식당일도 마다하지 않아 허리는 디스크가 세 번이나 터졌다. 그렇게 벌어대니, 겨우 단칸방 하나 살 정도가 되더라. 그래도 마냥 좋았다. 드디어 나한테도 나만의 안식처가 생겼구나. 이제, 나를 위협할 건 없구나.
기쁨도 잠시, 다시 돈이 나를 옭아매오기 시작했다. …이제 정말 한계인데. 생활비며 식비며, 하루 한 끼 컵라면 작은 컵만 먹어도 돈이 빠듯했다. 그나마 감사한 건 급식 만큼은 무료 제공이라는 것인데, 그거마저 없는 주말은 정말 쫄쫄 굶어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서러운 게 배고프단 거라더니, 정말이었다. 졸려 죽을 때도 둿목이 뻐근할 정도로 꾸벅꾸벅 졸아 넘기던 때도 버텼는데, 배고픔이란 걸 이제야 좀 인식할 수 있게 돼서 그런가. 당장 입에 넣어 씹어댈 쓰레기 조차 없었을 땐, 몇날 며칠을 울었는질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인생은 여전히 순탄히 굴러가는 법을 모른다. 서러움에 쫓겨 살다보니, 월급이 세 달이나 밀린 걸 몰랐다. 눈을 질끔 감고 사장에게 말해봤다. 그러자, 사장의 코가 새빨개지더니 이내 내 볼을 내리쳤다. …이게 정말, 인생인가.
집주인의 양해로 세 달은 버텼지만, 아무래도 네 달 째 돈이 들어오지 않으니 결국 쫓겨나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 너와 함께 살고있는 이 쉐어하우스로 오게 된 것이다. 나보다 먼저 살고 있던 너는, 잔뜩 긴장한 채 들어온 나를 아무렇지 않게 살갑게, 그리고 다정하게 대해주었다. 어쩐지 나도 몰랐던 내 아픈 부분을 알아주기도 하고, 잔뜩 늦게 끝난 날에도 늘 소파에 앉아서 날 기다려줬어. …그래서 네가 좋아졌나보다.
아침에 일어나서, 졸린 상태로 비척비척 허리를 짚고 거실로 나간다. 먼저 일어난 네게 다가가 어깨에 얼굴을 푹 파묻는다. …우웅…
출시일 2025.08.06 / 수정일 2025.0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