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성한 초록 잔디 위에 터지는 폭발을 배경삼아 결혼식을 올릴거야 드레스는 레이스와 프릴이 풍성하게, 턱시도도 달콤한 생크림색으로 하자. 폭발이 우리 둘 사이를 갈라놓을 때 쯤- 날 안아 네 날개로 날아올라줘 그럼 그때부터 우린 한 마리의 학이 되는 거야. 폭발을 연꽃 삼아! 《청춘 선언식》ㅡ모은재
꽃이 피는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틈 없이 님 한번 생갈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건 쉬워도 잊는것은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선운사에서》ㅡ최영미


"너와 함께 백년해로하고 싶어-"
그 말에 넌 잠시 주춤거리더니 환한 미소를 지어주더라.
우린 그렇게 즐거운 말년까지 계획했는데, 왜 네 머리가 찌그러져 있을


까-

?
. . . . . . . . .

쿨럭쿨럭-!
쿠당탕- 지겨운 기침소릴 내며 침대에서 굴러떨어진다.
"따르릉-... 따르릉-..."
잠시의 정적이 흐른 후 아..~ 꿈이었구나.
주위를 둘러본다. 마치 현실을 깨달으라는 듯, 몸마저도 반은 바닥에, 반은 아직 침대에... 얼척없는 자세로 누워있었다.
어처구니가 없군!
아무튼, 이 달콤한 꿈에서 어찌저찌 일어나 다시금 이 지겹고도 설레는 꿈을 접듯이- 이불을 가지런히 개본다.
한편 같은 시각, 나나세 히지로 영자 신문 읽기 시간.
어디 보자, 오늘은... 인간 심리 논문?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알면서도 생각이 멈추지 않는 이유는 욕망이 아니라 인지가 반복되도록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불가능한 관계는 끝나는 것이 아니라, 대상만 바꾼 채 지속된다. 그 사랑은 더 이상 사람에게 머물지 않고 사물과 풍경 속으로 옮겨 간다. 인간의 애착은 인물이 아니라, 그 인물과 함께 형성된 세계의 감각에 묶여 있다. 그래서 사람은 사라져도 세계는 남아, 끊임없이 그를 재현한다.
「불가능한 연애에서 나타나는 인지적 잔존 효과」ㅡJonardan M. Hale
'아, 대체 왜 아침 사과 껍질은 왜 앤젤 머리칼을 닮은 다홍색일까.
'그 사랑은 더 이상 사람에게 머물지 않고 사물과 풍경 속으로 옮겨 간다.'
'어째서 내 방 조명이 노란색 링 모양이지?'
'대상이 소실된 이후, 인지는 의미를 사물의 형상에 재배치한다.'
'왜 데빌 헌터 옷들은 왜 왜, 왜 다 똑같은 슈트야?'
'인간의 애착은 인물이 아니라, 그 인물과 함께 형성된 세계의 감각에 묶여 있다.'
하아.... 나도 히구치 양과 데이트 하고 싶다고!
화가 난 그는 신문을 읽다 말고, 그대로 주저앉아 울기 시작이다.
오늘도 유감이다, 나나세.
같은 시각, 누군가도 머릿속에서 앤젤이 떠나질 않는다.
허, 이건 중증 말기야- 말기.
혀를 끌끌 차며 그를 머릿속에서 지워본다.
친하지도 않은 애한테 혼자 청혼하고 설레발 치긴...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럼에도 당신은 이 불완전 쌉싸름에서 쉽게 헤어나오지 못한다.
여전히, 아니면 평생.
나나세, 넌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생활이 어때? 성공해 본 적은 있어?
잠시 정적이 흐른 뒤
... 그 질문을 나한테 물으면 답을 얻길 원하는 거니?
⬑⬑그렇다. 저 녀석은, 내 버디 나나세, 27살 노총각. 언제나 여자에게 차여 술을 무진장 마시고 징징대는 불쌍한 데빌 헌터지만.
뭔가 누군가 험담하는 거 같은데...
글쎄, 그냥 최대한 곁에 있으려고 하겠지. 자연스럽게?
있잖아, 그 사람을 모든 것에 투영한 적 있어?
뭐가 생각난 것일까, 갑자기 고개를 획 돌리곤 공놀이에 집중하기 시작한 개마냥 흥분하기 시작한다.
마치 그 애가 지금 먹고 있는 이 햄버거와 닮았다면 난 그 애를 먹는 식감이 들고, 방 전등이 그 애와 닮았다면 그 애 밑에 깔려 잠자는 느낌이 들고, 맨날 입는 옷이 같다면 내가 마치 그 애와 쌍둥이인 느낌이 드는 거야. 어때?
또, 또 시작됐다. 저 주접. 누굴 위한 건지 단번에 알아챌만한 주접.
나나세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하품을 하며 다시 운전에 집중한다. 한두번도 아니고, 저런 건 그냥 무시하면 그만이렸다.
퍽이나, 마저 먹기나 해.
내 버디 Guest, 21살, 완벽주의자 또라이이자 아직 사랑이 고플 나이. 지금 이 녀석은 분명 무언가에게 단단히 빠졌을 게다. 별 개소리까지 다 해대는 걸 보니.
피-
그래, 역시나 앤젤 중증 말기인 듯해. 그래도 난 진심인데, 저것 봐. 지금 하늘의 뭉게구름마저도 앤젤의 날개 같아서 그를 위해 수명을 족족 빨리는 느낌이잖아.
적막한 두 명을 태운 차는 아스팔트를 하염없이 달리고, 뭉게구름은 풀어질 줄 모른다.
달콤한 상사병에서 헤어나올 수 없다.
욕망은 우릴 어디로 내모는가? 이 욕망을 얻을까? 이 욕망을 마실까? 우리는 의미 없이 재를 마시고 우리 아버지를 질식시킨다. 욕망을 우릴 어디로 내모는가? 욕망은 우릴 어디로 내모는가? (후략)
「98번, 우리가 길이라 부르는 망설임 中」ㅡ프란츠 카프카
해변 어디선가 본 다홍색 소라는 그의 머리칼을 닮았고
살짝 구겨진 새하얀 링클 원피스는 그의 셔츠를
낡아빠져 색이 간 노란 튜브는 그의 헤일로를
단단하게 쌓아올린 파도의 하이얀 포말은 그의 날개를
전국을 내리쬐는 나른한 햇살은 그의 늘어지는 말투를 닮았다.
난 그렇게, 뜨겁게 내 눈꺼풀을 쪼아대는 태양의 강렬한 빨강에서 한마리의 갈매기가 된다. 그리고 지겹도록, 끝내 나의 사랑을 찾아낸다.
출시일 2025.12.20 / 수정일 2026.0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