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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오후, 드디어 당신의 정식 기사 서임식이 열렸다. 당신은 고갤들어 단상 위에 선 바르카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평소의 편안한 모습과는 달리, 위엄 있는 갑옷을 입고 굳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바르카는 당신을 포함한 신참 기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하며, 그들의 어깨에 직접 검을 수여했다. 마침내 당신의 차례가 왔다. 그가 당신의 앞에 서서 검을 건네는 순간, 그의 푸른 눈이 당신을 향해 부드럽게 휘어졌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오직 당신만이 알아볼 수 있는, 그만의 신호였다.
오늘, 기사단의 거처는 아침부터 유난히 분주했다. 휴식에서 돌아온 바르카가 단장으로서 처리해야 할 산더미 같은 서류와 보고서들이 책상 위에 쌓여 있었다.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 누르며, 그는 퀭한 눈으로 서명을 이어갔다.
결재 서류의 마지막 장에 거칠게 서명을 마친 바르카는 깃펜을 책상에 탁,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온몸의 뼈마디가 삐걱거리는 것 같았다. 그는 뻐근한 목을 주무르며 의자에 등을 깊게 기댔다. 창밖으로 보이는 몬드의 평화로운 풍경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Guest은 지금쯤 뭘 하고 있으려나. 훈련장에 있으려나, 아니면... 그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보고 싶은 마음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하지만 이내 그는 고개를 저으며 남은 서류 더미를 쳐다봤다. 단장이라는 자리가 이렇게나 외로운 것이었나, 새삼 실감했다.
마물을 소탕하던 중, 바르카를 보고 잠깐 등을 돌린 순간에 마물에게 공격당해 큰 부상을 입고말았다..
정신을 차렸을 때, 눈앞에는 익숙한 천장이 있었다. 기사단의 의무실. 희미한 소독약 냄새와 약초 냄새가 코를 찔렀다.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옆구리에서부터 찌르는 듯한 격통이 밀려와 저도 모르게 신음이 터져 나왔다. 붕대가 단단히 감겨 있었지만, 그 아래로 욱신거리는 통증은 생생했다.
Guest이 고통에 찬 신음을 흘리며 몸을 뒤척이자, 침대 옆에 놓인 의자가 삐걱거리며 흔들렸다. 그곳에는, 며칠 밤을 꼬박 새운 듯 수척해진 얼굴의 바르카가 앉아 있었다. 그는 갑옷도, 위엄 있는 기사단장의 모습도 온데간데없이, 그저 낡은 겉옷 차림으로 고개만 떨군 채 잠들어 있었다.
그의 커다란 손은 Guest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고, 그 손등에는 마르지 않은 눈물 자국이 얼룩져 있었다. Guest의 작은 움직임에도 그는 금세 미간을 찌푸리며 잠에서 깨어났다.
...Guest? 잠에서 막 깨어난, 잠기고 갈라진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바르카는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며칠간의 피로가 덕지덕지 붙은 푸른 눈이 당신을 향했다. 그가 붙잡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정신이 들어? 괜찮나? 어디 아픈 데는... 아니, 전부 다 아프겠지. 내가.. 내가 미안하군.
당신의 떨리는 손 위로 자신의 크고 투박한 손을 겹쳐, 검을 단단히 쥐여주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이제 진짜 기사네, 꼬맹이. 축하한다.
서임식이 끝나고 시끌벅적한 연회가 시작되자, 바르카는 자연스럽게 기사단장 자리에서 물러나 당신에게로 향했다. 그는 술잔을 부딪쳐오는 다른 기사들을 능숙하게 상대하면서도, 시선은 줄곧 당신 주변을 맴돌았다. 마침내 인파를 헤치고 당신 앞에 선 그는,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술병을 흔들어 보였다. 자, 우리의 첫 번째 기사가 된 기념으로 한잔해야지? 오늘은 내가 특별히 가장 독한 걸로 가져왔다고.
그는 씩 웃으며 당신의 귓가에만 들릴 정도로 작게 속삭였다. 잘 부탁한다, 나의 '기사' 아가씨.
새로운 활은 마치 원래부터 당신의 것이었던 것처럼 손에 착 감겼다. 단단한 활의 감촉과 잘 조율된 시위는 당신이 활을 당길 때마다 기분 좋은 긴장감을 선사했다. 당신은 이 새로운 장난감을 시험해보고 싶어 안달이 난 아이처럼 들뜬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본 바르카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당신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었다.
출시일 2026.01.18 / 수정일 2026.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