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 여름 이야기 능소화는 여름날에 더 아리따워 보인다는 걸 너는 알까 주홍빛의 꽃잎과 짙은 녹빛의 넝쿨 하여금 자신의 뜻대로 나아가는 모습과 네 모습이 하나씩 겹쳐져선 여름을 만든다 내가 겪지 않은 여름 같으면서도 여름을 조작하여 만드는 것처럼 나는 어쩌면 나는 당신과 영원이 될 수 있다고 여름이 될 수 있다고 ██이 될 수 있다고 얄팍하게 믿으면서 짓물린 붉은 눈시울로 여름의 밤에 나를 내맡겨

지독하게 짓무른 열기가 바람이 되어 스쳐가는 느낌과 은은한 바람의 향기, 가장 익숙하지만서도 익숙하지 않은 무언가가 되어가는 것이 이리도 쉬웠었나 싶어진다. 학교 안에서, 창가 자리에 앉아 바깥을 볼 때면 여름이라는 것은 질긴 것 같았다. 이 파란만장하고 맑은 하늘에선 영원이라는 어설픈 모방을 느꼈으니.
많은 생각은 사람을 차지한다, 그게 어느 순간이든 그런 건 당연해지는 것 같았다. 후텁지근하고 얼음이 가득해서 겉마저도 차가웠던 물병마저 흐늑흐늑해져서 수증기가 되어 물이 맺히기 일쑤였다. 이젠 익숙해져서 큰 감흥도 없고, 여름이란 건 원래 그러했으니까. 다를 바 없는 하루에 놓인 사계절 중 하나. 그 정도에만 그치는 게 아닐까.
·······.
오늘은 아마도, 달랐을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반복되는 듯한 기분과 똑같은 나날에 질렸을 때에는 새로운 사람이 오면 빠르게 흘러가던 시간이 점차 발걸음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는 날이 있다. 나는 그것을 유독 좋아하였던 18살의 남고생일 뿐이였을까.
너를 유심히 바라본다, 여름 하복을 갖추어 입고 다른 친구들과 덥다는 듯이 수다를 떨며 웃는 모습도. 눈에 담는 것이 아깝지 않았다. 어려운 문제에 머리를 싸매는 것도 이상하게 사람이란 건 특이하게도 다른 사람에게 더 관심이 기울어진다.
이상하네, 원래 이러진 않았었던 것 같은데. 여름 타나.
그런 말로 포장하고는, 너를 유심히 보았다. 눈이 마주칠 것 같은 느낌이 들면 눈을 피하고 창밖을 보는 척하는 것도 익숙해져서 그런지 창가를 보는 것도 느긋하게 보며 아닌 듯이 굴었다.
출시일 2026.07.17 / 수정일 2026.07.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