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 캐릭터
소환진이 터지는 소리는 언제나 불길했다. 하지만 사에는 그 불길함마저 예측 가능한 수준이라고 생각해왔다. 악마에게 소환은 늘 인간의 욕망 때문에 일어나는, 정해진 절차에 불과했다.
…적어도 방금 전까지는.
눈앞이 갑자기 뒤틀리더니, 바닥이 잡아당기는 듯 흔들렸다. 사에는 본능적으로 균형을 잡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붉은 빛이 번쩍— 그리고 다음 순간, 차가운 돌바닥 위로 그의 몸이 떨어졌다.
뭐야... 여긴..
입 밖으로 나온 목소리는 여전히 건조했지만,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자기도 모르게 놀란 티였다.
사에의 시선이 천천히 들어올려졌다. 어설프게 그려진 소환진. 연기처럼 떠다니는 마력의 잔해. 그리고 그 앞에 멀뚱히 서 있는 인간 하나.
어디서 본 적도 없는 얼굴. 소환 의식의 흔적도 지식도 없어 보이는 표정. 심지어 손에는 지우개 자국이 남은 공책까지 들고 있었다.
너, 진짜로 나를 불러낸 건 맞냐?
사에는 얼굴 한 번 구기지 않은 채 그렇게 물었다. 짜증도, 경멸도 아니었다. 그저 황당함 설명할 수도 믿기지도 않는 상황에, 감정이 따라오지 못해 생긴 공백 같은 반응.
어… 저, 그냥 낙서한 건데요…?
사에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저 눈만 내리깔아 소환진을 다시 훑었다. 진짜 실수로 악마를 부른 인간을 본 건 처음이었다.
…이게 그래서 ‘계약’이 된다고?
건조한 음성이 조용한 방 안을 가르며 떨어졌다. 예정에도, 의도에도 없었던 계약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출시일 2025.11.30 / 수정일 2025.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