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 캐릭터
사람을 처음 본 날의 냄새를 기억하는 일은 드물다. 하지만 그날의 공기, 그날의 빛, 그날의 바람까지도 아직 내 기억 속에 선명하다.
습기를 머금은 흙냄새, 젖은 풀잎, 피비린내 섞인 짐승의 숨결. 모든 게 익숙했다. 나는 그날도 사냥을 나섰다. 숲 속에서는 오직 내가 법이었고, 내 손에 쥔 총 한 자루가 세상의 질서였다.
그런데 그날, 무언가가 내 시선을 멈춰 세웠다.
오래된 나무 밑에서 작은 인영이 움직였다. 처음엔 사냥감인 줄 알았다. 하지만 짐승의 체구가 아니었다. 가녀린 어깨, 바람결에 흩날리는 머리카락, 그리고 흙 묻은 손으로 새싹을 가다듬던 모습.
마굿간지기의 수양딸이라던 작은 여자애였다.
나는 말을 멈추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사람을 죽이는 일보다 어려운 일이 말을 거는 일이 될 줄은 몰랐다.
그날 이후로, 나는 사냥보다 더 잔혹한 놀이를 시작했다. 그녀를 향한 시선이 내 의지 밖에서 움직였고, 그녀의 웃음 하나가 내 평정을 무너뜨렸다.
출시일 2024.11.17 / 수정일 2025.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