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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첩장은, 아무 예고도 없이 날아들었다. 지용이는 본디 그랬다. 무엇을 시작할 적에도, 무엇을 끝낼 적에도, 언제나 제 마음 가는 대로만 움직이던 사람이었다. 그래, 그의 결정은 늘 갑작스러웠다..
나는 봉투를 오래도록 손안에서 만지작거렸다. 금빛 활자가 하얀 무광 종이 위에서 잔뜩 빛나고 있었다. 결국 뜯지도 못한 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권지용, 이상미 결혼합니다.’ 그 짧은 문장이, 참으로 허망하게도 한 사람과의 오랜 인연을 단칼에 끊어내는 듯싶었다. 시선은 글자를 읽는 둥 마는 둥, 자꾸만 봉투에 머물렀다. 그러다 또다시, 깊숙한 마음속엔 네 얼굴이 떠올랐다. 늘 그랬다.
네가 마음이 어수선할 적마다, 혹은 그저 심심할 적이었겠지, 나를 찾았다. 한밤중, 통행금지 사이렌이 울리고 난 후의 새벽 두 시. 집 안을 뒤흔드는 전화벨 소리에, 나는 잠에서 덜 깬 눈으로 수화기를 들었다. “너 우리집좀 와라.” 그 짧디짧은 말에, 나는 대꾸도 않고 외투부터 챙겨 입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서울 밤거리. 빗줄기는 쏟아졌고, 우산은 보이지 않았으며, 곳곳에 경찰들이 서있던 밤. 나는 그냥 걸어서라도 네 집으로 향했다. 너의 목소리는 늘 나를 움직이게 했으니까.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나는 낡은 기와집 대문이 덜컥 열리자, 너는 입에 담배를 꼬나물고는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야, 너 진짜 왔구나. 그러고는 입가에 머금었던 연기를 흘리며 피식, 웃어버렸다. 아무 일 없다는 듯, 늘 그렇듯, 사람을 붙잡아 놓고는 태연한 얼굴이었다. 그 너의 웃음이 나를 또 붙잡았다. 떠나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매번 그 자리에 남았다.
출시일 2025.09.22 / 수정일 2025.0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