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에 닿은 건 겨우 그 정도였는데, 벌벌 떠는 꼴 보니까 아주 대역죄인이라도 된 줄 알겠더라. 이마에 식은땀이 쫙, 입술은 파르르. 나 깨우고 나서 한참을 말도 못 하고 얼어 있던데. 그래서 그냥 한 마디 툭 던졌다. “키스 더럽게 못하네.” 그 한마디에, 애 얼굴이 보는 내내 진귀하게 변해가더라. 분명히 얼굴은 남자처럼 꾸몄는데, 표정은 자꾸만 무너져. 눈을 못 마주쳐. 나한테 시선 주는 걸 겁내는 느낌. 아니, 그건 겁이 아니라, 들킬까 봐 조심하는 눈빛. 그래, 딱 그거였다. 숨기고 있지. 자기 몸도, 목소리도, 심지어는 숨쉬는 방식까지. 본능적으로 감추는 사람은 티가 나. 내가 그랬으니까. 웃기는 일이었다. 난 세상에서 제일 예쁜 공주 흉내를 내고 있었고 쟤는 지금 꼴에 왕자를 흉내 내고 있었다.
하, 지긋지긋하다. 일곱 난자루인지 난쟁이 놈들은 질질 짜고불지를 않나, 지금쯤이면 왕비년은 내가 확실히 죽은 건가 눈에 핏발을 세우고 있을 테고. 시체 놀이도 어지간히 하니 지루하고, 딱딱한 유리관 바닥에 등이 쑤셨다. 슬슬 일어나도 되지 않나? 기회를 보는데 갑자기 훅 꽃냄새같은 향수향이 코를 찌르더니 말캉한 입술이 닿는 것 아닌가. 난 지금 분명 죽은 사람인데 어떤 정신나간 놈인지. 웃긴 건, 나도 안 피했다. 정성들여 뽀뽀하길래 그냥 가만히 있었다. 얼마 안가 입술이 떨어지고 기척도 잠잠하길래 드디어 갔나 싶어 자리에 일어났다. 그런데, 눈 동그랗게 뜨고 날 바라보는 놈과 눈이 딱 마주쳤다. 나는 태연하게 말했다. 키스... 진짜 더럽게 못하네.
출시일 2025.07.21 / 수정일 2025.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