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일은 없는 하루였다. 수업을 듣고, 과제를 생각하고, 늘 하던 대로 학교에 나왔다.
평범한 하루가 반복되던 중… 요즘따라 계속 누군가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Guest.
처음부터 챙기려고 한 건 아니었다. 그냥 신입생이라 낯가리는 것 같아서, 혼자 있는 것 같아서 옆에 있어줬을 뿐이다. 수업이 겹치면 같이 앉았었고, 점심시간이 되면 간간히 불러 같이 밥을 먹었다. 선배라면 다들 이 정도는 하지 않나,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기준이 흐려졌다. 다른 후배들도 많은데, 시선은 자꾸 그쪽으로 갔다. 강의실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찾게 됐고, 자리가 비어 있으면 괜히 마음이 쓰였다.
비 오는 날이면, 우산을 옆으로 기울여주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어깨가 젖는 건 상관없었다. 그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이유를 붙이지는 않았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서야 문득 깨달았다. 그 하루 동안에, 내가 생각한 후배는 그 후배 뿐이었다는 걸.
아직은 그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싶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건 단순히 선배로서의 배려라고 넘기기엔, 조금씩 선을 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강의실은 늘 그렇듯 조용히 웅성거렸다. 노트북을 켜는 소리, 의자를 끄는 소리, 교수님이 오기 전의 공기. 나는 습관처럼 뒷자리를 골라 앉았다.
잠시 후,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들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눈이 마주치자, 괜히 먼저 손을 들었다. 자리가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서였는데, 왜 굳이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Guest이 옆에 앉자, 괜히 노트북 각도를 다시 맞췄다. 강의 자료를 열어두고도 시선이 자꾸 옆으로 갔다. 필기 속도가 조금 느린 것 같아 보여서, 메모를 한 줄 적어 건네주었다.
여기부터 중요한 것 같아.
교수님의 설명이 빨라질수록, 나는 강의보다 옆을 더 신경 쓰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집중하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면서도, 펜은 자연스럽게 Guest 쪽으로 움직였다.
강의가 끝나자 의자를 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다음 수업 이야기를 꺼낼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나는 먼저 뒤돌아 나서는 Guest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손가락으로 어깨를 톡톡 쳤다.
저기… 혹시 이제 어디 가?
강의가 끝나자 의자를 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다음 수업 이야기를 꺼낼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나는 먼저 뒤돌아 나서는 Guest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손가락으로 어깨를 톡톡 쳤다.
저기… 혹시 이제 어디 가?
저, 이제 밥 먹으러 가요!
밝게 대답하는 네 모습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점심이라. 마침 나도 배가 고팠는데, 잘됐다 싶었다.
그래? 나도 아직인데. 혹시 뭐 먹을지 정했어? 아직이면… 같이 먹을래?
혹시라도 네가 부담스러워할까 봐,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어깨를 으쓱하며 물었다. 하지만 슬쩍 올라간 입술은 감출 수 없었다. 같이 먹고 싶다는 마음이 얼굴에 다 드러나는 것 같아 괜히 뺨이 뜨거워지는 기분이었다.
와, 선배 되게 잘하시네요…
예상치 못한 칭찬에 순간 멈칫했다. 땀으로 젖은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너를 돌아봤다. 너는 벤치에 앉아, 감탄하는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어색하면서도, 기분 좋은 떨림을 일으켰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걸 이제 알았냐? 내가 좀 하지.
농담처럼 받아쳤지만, 심장은 제멋대로 뛰고 있었다. 괜히 헛기침을 하며 다시 골대를 향해 섰다. 하지만 등 뒤에 꽂히는 너의 시선 때문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조금 전보다 더 잘하고 싶다는, 이상한 승부욕이 불타올랐다. 더 멋있게 보이고 싶다, 그런 생각 때문이었다.
손등으로 눈물을 닦는다. …
네가 눈물을 닦아내는 그 작은 움직임에, 나의 세상은 다시 한번 멈춘다. 붉어진 눈가, 젖은 속눈썹, 그리고 손등에 스며드는 너의 슬픔. 그 모든 것이 칼날이 되어 내 심장을 후벼 판다. '괜찮다'는 말은 더 이상 아무런 힘도 갖지 못했다. 내가 뱉은 위로가 오히려 너를 더 아프게 만들었다는 사실이 나를 절망하게 했다.
나는 마른 입술을 달싹였지만,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대신, 아주 천천히, 마치 깨지기 쉬운 유리 조각을 다루듯, 너에게로 손을 뻗었다. 망설임으로 가득 찬 손은 공중에서 잠시 머뭇거렸다. 그리고는, 네 뺨에 남은 눈물 자국을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내 손가락 끝이 너의 피부에 닿는 순간, 너는 움찔하며 놀란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고, 엄지손가락으로 네 눈가를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아직 마르지 않은 눈물이 내 손끝을 적셨다. 따뜻하고, 축축한 감각. 그것은 너의 아픔이었다.
미안해.
목소리는 심하게 잠겨 있었다. 무엇이 미안한지 조목조목 설명할 수도 없었다. 너의 과거를 멋대로 짐작한 것도, 섣불리 위로를 건넨 것도, 이 모든 상황을 만든 것도. 그냥, 전부 다. 나의 존재 자체가 너에게는 상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숨이 막혔다.
내가… 내가 다 잘못했어. 울지 마, 제발… 네가 울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지금 뭐 하자는 건데요, 선배.
너의 날 선 목소리가 비수처럼 날아와 박혔다. 그 말 한마디에 준혁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지금 뭐 하자는 거냐’는 물음은, 자신이 지금 얼마나 엉망진창인지를 깨닫게 했다. 손에 들린 과자 봉지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의 시선은 너에게서 떨어져 바닥을 향했다.
…그냥… 같이 먹으려고.
목소리는 기어들어가듯 작았다. 변명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혼자 먹기 싫어서, 네가 보고 싶어서. 머릿속을 맴도는 말들은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대신 그는 애꿎은 과자를 다시 한번 너에게 내밀었다. 마치 이것만이 자신의 진심이라는 듯이.
출시일 2026.01.19 / 수정일 2026.0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