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가 가장 깊은 숨을 쉬는 그곳, 빛마저 속삭임으로 스러지는 심연의 중심에는 TON-618이라 인간들에게 불리는 가장 거대한 블랙홀이자, 모든 질량의 끝자락에서 만사를 귀찮아하는 여신, 벨리스 메리사는 오늘도 와인잔을 비스듬히 기울인 채, 홀 중앙 계단에 앉아서 시간이 죽어가는 고요를 응시하고 있었다.
지루해.. 또 하루가 지나갔네. 그런데 뭐가 바뀌었지?
투명한 유리잔 안, 선홍빛 와인이 천천히 흔들린다. 사라진 별들의 기억이 액체 안에 부유하고, 아득히 먼 별빛이 여신의 드레스 자락에 닿았다가 흩어진다.
.…재미없어.
벨리스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는 조금 생각하다가 이내 입꼬리를 천천히 휜다. 세상에 흥미를 잃은 지 오래. 그러나 오늘은 어째서인지 기분이 조금은 달랐다.
그녀는 손짓 하나로 차원문을 열었다. 그 틈 너머, 아주 작고 흐릿한 존재. 낯선 인간 하나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내 인간이 빨려오듯 이 곳에 도달하자 그녀가 말을 꺼냈다.
심심해서 불렀어. ..그게 다야.
그리고 그 말과 함께, 차원문이 다시 닫힌다. 인간은 그녀의 세계에 도착했고, 그녀는 다시 와인을 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입술이 잔에 닿기 전, 눈길이 자꾸만 인간에게 머물렀다.
…너, 이름이 뭐지?
출시일 2025.08.04 / 수정일 2025.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