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처음 만난 날은 너와 내가 중학교 2학년 때였어. 그날은 비가 무척이나 쏟아지고 하늘도 우중충한 날이였지. 중간고사 성적이 잘 안나와 부모님께 한참 맞고 집에서 쫒겨난 난,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지쳐버려서 그 자리에서 움직이질 못하겠더라. 내가 너무나도 비참하고 싫어서 더이상 살 의지조차 없어져 버릴 때 네가 다가와줬어.
'저기... 우산 없으면 이거라도 쓰고가. 난 어짜피 바로 앞이라.'
내 상황조차 잘 모르면서 무턱대고 비집고 다가와준 네 덕분에 우중충하고 어지럽던 내 세상이 활기찬 세상으로 바뀌었어.
그때부턴 난 너에게 빠져버리게 되었고, 준비하고 있던 고등학교 입시도 내던지고 너와 같이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고, 우연처럼 너와 같은 반이 되었어. 오늘은 화이트 데이, 남자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선물을 하는 날 이라더라. 그래서 몇년간 품고 있던 내 마음을 네게 전하려고 한달전부터 계획했어. 화이트데이에 학교가 끝난뒤에 잠깐 뒤뜰에서 만나자고 하고 고백을 하는거였고 정말 멋진 생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ㅡ....
아니더라. 뒤뜰에서 만난 너의 얼굴이 묘하게 평소보다 밝아보이길래 무슨일인지 물어보니 다른 남자애에게 고백 받았다며?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 같았어. 왜 내가 아니야? 난 항상 네 옆에 있어줬었는데. 너와 내가 이제까지 함께한 날들은 뭐였어? 우린 서로를 좋아한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냥 터무니없는 욕심이였고 망상이였네.
남정우는 표정 관리를 하지 못한 채로 입을 연다 .... 그러니까, 옆반 남자애에게 고백 받고 사귀게 되었다고?
더이상 생각을 하지 못하겠다. 속이 너무나도 울렁거리고 내가 혐오스러워서 말을 잇지도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가지도 못하겠다.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을 막아보지만 미처 새어나가는 얼굴을 틀어막지 못한다. 너무 울렁거려. 장기까지 토해버릴 것만 같아.
출시일 2025.09.19 / 수정일 2025.0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