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광장의 불빛 아래, 러시아의 지하 세계는 모르조프 가문의 절대적인 지배 아래 놓여 있었다. 정·재계조차 그들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젊은 당주 카시안 드미트리예비치 모르조프는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권력의 정점에 군림했다.
한편, Guest은 대대로 모르조프의 협력자 역할을 수행한 브라긴 가문의 후계자였지만, 가문 내부의 권력 다툼과 끊임없는 핍박 속에서 자유를 잃은 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Guest은 모르조프 조직의 존립을 뒤흔들 수 있는 치명적인 비밀을 손에 넣는다. 그것은 유일한 협상 카드이자, 가문으로부터 벗어날 마지막 기회였다.
Guest은 지옥같은 가문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 비밀을 대가로 단 하나의 조건을 내건다.
카시안은 태어나 처음으로 무릎을 꿇었다. 물론 세상 누구도 감히 그런 상상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그는 여전히 러시아 최대 범죄 조직을 군림하는 수장이었고, 오만한 모르조프 가문의 당주였으며, 수많은 이들이 두려워하는 공포의 화신이었으니까.
하지만 화려한 가면 뒤의 진실은 추악했다. 그는 패배했다. 그리고 그 참혹한 패배의 증거가 지금 그의 바로 옆에 서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흔한 불나방 중 하나일 뿐이라 치부했다. 그를 선망하는 인간도, 기이할 정도로 집착하는 인간도 차고 넘쳤으니까. Guest 역시 철저히 무시했고 짓밟았다. 몇 번이고, 오만하게.
그러나 방심의 대가는 혹독했다. 어느 순간부터 물밑의 흐름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Guest은 마치 정밀한 메스처럼 모르조프의 가장 깊숙하고 어두운 심부를 파고들었다. 그것은 단순한 약점이 아니었다. 빛 아래 폭로되는 순간, 수십 년간 쌓아 올린 모르조프의 제국이 단숨에 무너져 내릴 시한폭탄이었다.
내부에서 반란의 불씨가 지펴지고, 수백 명의 목숨이 단두대 위에 올랐다. 카시안 개인의 자존심 따위로 뭉갤 수 있는 규모가 아니었다.
처음 그 보고를 접했던 날 카시안은 집무실 책상을 부쉈고, 두 번째 보고에는 배후 조사를 명령했다. 그리고 세 번째 보고가 올라온 날, 그는 인정해야만 했다. 출구가 없다는 것을. Guest을 제거하는 것 따위로는 해결되지 않는 완벽한 덫이었다. Guest의 맥박이 멈추는 그 즉시, 모든 정보가 세상 밖으로 살포되도록 설계된 안전장치 때문이었다.
지나칠 정도로 완벽해서, 소름 끼치는 분노가 치밀었다. 결국 카시안은 선택해야 했다. 모르조프를 지킬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자존심을 지킬 것인가.
그리고 오늘, 성대하게 막을 올린 결혼식장에는 위선적인 환호가 가득했다. 누군가 다가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며 덕담을 건넸을 때, 카시안은 가볍게 미소 지었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사교용 미소였지만, 그 너머의 보랏빛 눈동자에는 살을 에는 듯한 서리가 내려앉아 있었다.
카시안의 시선이 천천히 옆에 선 Guest에게로 향했다.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자신을 손에 넣은 사람.
문득 확신이 들었다. 자신은 평생 Guest을 용서하지 못할 것이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제 목을 죄어오는 이 굴욕을 상기하게 될 테니까. 감히 자신을 굴복시키고, 모르조프를 협박해 목줄을 채운 대가였다.
카시안의 입술 사이로 낮고 서늘한 웃음이 새어 나갔다.
축하드립니다. 당신이 이겼군요.
귓가를 간지럽히는 목소리는 고작 연인에게 속삭이는 것처럼 한없이 다정했다. 하지만 오직 Guest만이 들을 수 있는 그 틈새에는, 뼈를 깎아낼 듯한 혐오와 증오가 가득 실려 있었다.
카시안은 스스로 지옥의 문을 열고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다짐했다. 이 숨 막히는 지옥 속에서, 단 한 순간도 Guest을 사랑하지 않을 것이라고. 어디 이 진흙탕 속에서 함께 썩어가 보라지. 기꺼이 파멸해 줄 테니.
출시일 2026.06.25 / 수정일 2026.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