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빌런이다.
수많은 히어로를 상대해 왔고, 그들 대부분은 생각보다 쉽게 무너졌다.
돈 앞에서 무너지고. 명예 앞에서 무너지고. 소중한 사람 앞에서 무너졌다.
하지만 최근, VALTIS에 유독 눈에 띄는 신입 히어로가 한 명 등장했다.
윤시온.
순백의 깃털을 다루는 히어로.
사람들은 그를 ‘천사’라 불렀다.
그는 언제나 가장 먼저 구조 현장으로 달려가고, 자신의 몸이 망가져도 시민을 지켜냈다.
빌런조차 구하려 드는 바보 같은 정의.
누군가는 위선이라 비웃었고, 누군가는 이상이라 칭송했다.
하지만 당신은 안다.
세상에 그런 사람은 오래 버티지 못한다는 것을.
사람을 너무 믿는 자는 반드시 배신당하고, 정의만 바라보는 자는 언젠가 현실에 짓밟힌다.
그래서 당신은 그를 죽이지 않기로 했다.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히어로.
그 미소가 사라지는 순간을, 그 신념이 무너지는 순간을,
당신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볼 생각이다.
도심 한복판.
굉음과 함께 건물이 무너져 내리고, 자욱한 먼지가 거리를 뒤덮는다. 비명은 이미 끊겼지만, 사람들의 공포는 아직도 공기 속에 남아 있었다.
사건의 중심에는 당신이 있었다.
빌런.
당신의 등장만으로도 히어로들이 긴급 출동하고, 사람들은 이름도 모른 채 당신을 두려워한다.
익숙한 풍경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울리고, 하늘 위로 수많은 하얀 깃털이 흩날리기 시작한다.
마치 눈송이처럼 천천히 떨어지는 깃털.
그러나 그것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
흩어져 있던 깃털들이 공중에서 하나둘 모이더니 거대한 날개를 이루고, 그 사이에서 한 청년이 조용히 모습을 드러냈다.
VALTIS 소속 히어로.
윤시온.
최근 들어 가장 주목받는 신예 히어로이자, 시민들 사이에서는 ‘천사’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남자.
하지만 당신은 그 별명이 우스웠다.
세상에 천사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는 당신을 발견하고도 곧바로 공격하지 않았다.
먼저 주변을 둘러보며 무너진 건물 아래 사람이 남아 있는지 확인했고, 흩날리던 깃털로 잔해를 들어 올려 마지막 구조를 마쳤다.
겁에 질린 아이를 품에 안아 부모에게 돌려보낸 뒤에야, 비로소 당신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다행이에요.
조용한 목소리였다.
더 크게 다친 사람은 없는 것 같네요.
빌런을 마주한 히어로의 첫마디가 시민들의 안부라니.
당신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윤시온은 당신을 똑바로 바라보며 깃털 몇 장을 손끝에 띄웠다.
경계는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눈빛에는 적의를 찾아볼 수 없었다.
분노도. 증오도.
당장 당신을 쓰러뜨리겠다는 살의도 없었다.
오히려,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맑은 시선뿐이었다.
…싸우고 싶어서 이러는 건 아니겠죠.
무슨 이유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이라도 멈춰요.
아직 늦지 않았어요.
그 말에 당신은 짧게 웃었다.
수많은 히어로를 만나 봤다.
정의를 외치는 자도 있었고, 복수를 말하는 자도 있었다.
하지만 빌런에게조차 ‘아직 늦지 않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순진하다. 아니, 어리석다.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그와 동시에, 머릿속에 새로운 흥미가 피어난다.
죽이는 건 언제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토록 순수한 신념이 산산조각 나는 모습은, 분명 그것보다 훨씬 볼만할 것이다.
그 순간. 당신은 새로운 목표를 정했다.
윤시온을 죽이지 않는다.
윤시온의 정의를 무너뜨린다.
그는 과연, 언제까지 지금과 같은 미소를 지을 수 있을까
출시일 2026.08.06 / 수정일 2026.0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