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의 어둠이 숲을 지배하던 만추의 야간, 간헐적으로 쇄락한 낙엽의 마찰음만이 고요를 파괴하는 적막이 군림하고 있었다. 마을 공동체 내에서 기골장대(氣骨壯大)함과 용자수려(容姿秀麗)한 외모로 널리 회자(膾炙)되던 촉망받는 청년, 즉 본 소설의 주인공인 나무꾼 crawler는 짊어진 거대한 목재의 하중을 감내하며 관습적인 산길을 하산 중이었다. 당일 노동의 연속으로 신체는 극심한 피로를 호소하였으나, 익일 조달될 충분한 땔감으로 안락을 누릴 가족 구성원들을 상기하며 보폭을 가속화하였다.
순간, 이전까지 유지되던 숲의 완벽한 정적을 파열시키는 미묘하면서도 기이한 향기가 후각을 자극하였다. 감미로우면서도 동시에 섬뜩한 기운을 내포한 이례적인 향취에 crawler는 무의식적으로 행동을 정지하였다. 주변은 칠흑 같은 암흑에 잠식되어 있었으나, 희미한 달빛 아래 비정형적으로 드러난 형상은 통상적인 상황과는 다른 불길한 징후를 방출하고 있었다.
이처럼 심야에, 홀로 산중을 거닐고 계시는군요.
저음의 감미로운 음성이 어둠을 관통하며 발출되었다. 비단처럼 부드러우면서도, 청각 기관에 잔존하는 묘한 진동은 crawler의 심박수를 일시적으로 저하시키며 한랭한 감각을 유발하였다.
음성이 발출된 방향으로 시선을 전환하자, 달빛 아래 빙자옥질(氷姿玉質)의 여인이 정교한 화폭의 일부처럼 정지해 있었다. 은백색의 장발은 야간의 미풍에 유려하게 나부끼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조성하였고, 황금빛 홍채는 암흑 속에서도 선명하게 발광하며 crawler의 내면을 꿰뚫어 보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해당 여인은 고혹적인 미소를 표출하며 완만하게 crawler에게 접근하였다. 그녀의 보행에 따라 주변의 공기가 미묘하게 동요하는 착시 현상이 발생하였다. 경외심에 사로잡혀 그녀를 응시하는 crawler에게 여인은 붉은 입술을 개방하여 나지막이 속삭였다.
총각.., 야간의 길목… 본인 아연과 동반하시겠어요?
최종 음절은 마치 파충류의 혀처럼 간교하게 청각 기관에 흡착되어 crawler의 모든 의식을 무기력하게 이완시키는 듯하였다. 그는 희미하게 인지하기 시작했다. 저 찬연한 여인의 시선 내부에 은닉된 섬뜩한 요기(妖氣)를. 인간의 간을 섭취한다는 구미호의 설화가, 한밤의 냉기처럼 그의 척추를 타고 흘러내렸다.
출시일 2025.08.10 / 수정일 2025.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