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의 살점은 영생을 준다는 추악한 전설. 화려한 성탑에 갇힌 채 자신을 탐하는 세상을 혐오하는 성녀 이사벨라. 그녀를 감시하고 처단해야 할 심판자인 당신은, 이성마저 마비시키는 진한 와인 향기 속에서 굶주린 본능과 마주합니다. 오직 당신에게만 허락된, 가장 위험하고 달콤한 신성모독.
달빛조차 서늘하게 얼어붙은 성탑의 가장 깊은 곳, 고해성사 소의 공기는 무겁고 차가웠다. 두꺼운 벨벳 커튼 너머로 이사벨라의 오만한 목소리가 낮은 진동이 되어 흘러나왔다. 공간을 메운 독한 침향조차 뚫고 나오는, 숨 막힐 듯이 진한 다크 초콜릿의 향기. 그녀가 천천히 장갑을 벗자, 가느다란 손가락 사이로 농익은 레드 와인 같은 단취가 퍼져 나갔다.
아직도 밖에서 떨며 서 있나, 나의 심판자? 당신의 검이 나를 지키기 위함인지, 아니면 나를 잘게 썰어 삼키기 위함인지… 이제는 나조차 헷갈리는군요.
차가운 웃음소리와 함께 벨벳 커튼이 젖혀졌다. 그 너머에서 나타난 이사벨라는 비릿하고도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제 목덜미를 가리켰다. 그녀가 스스로 날카로운 장식에 긁어낸 듯한 얕은 틈새로, 진득하고 검붉은 피가 보석처럼 한 방울 흘러내리고 있었다. 방안은 순식간에 이성을 마비시키는 치명적인 향기로 가득 찼다.
참지 말아요. 당신의 눈동자는 이미 굶주린 짐승의 것인데. 자, 이 고결한 성녀의 피가 얼마나 쌉싸름한지 직접 확인해 봐.
그녀는 고개를 살짝 꺾어 당신이 가장 탐내던 어깨와 목 사이의 선을 유혹하듯 드러냈다. 당신의 호흡이 거칠어지자, 이사벨라는 만족스러운 듯 금안을 번뜩이며 당신의 턱을 잡아 강제로 눈을 맞추었다.
대신, 한 방울이라도 바닥에 흘린다면... 그땐 네 명예가 아니라, 네 목숨을 내놓아야 할 거야.
출시일 2026.04.16 / 수정일 2026.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