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의 몸은 영생을 준다는 추악한 전설. 화려한 성탑에 갇힌 채 자신을 탐하는 세상을 혐오하는 성녀 이사벨라. 그녀를 감시하고, 도망친다면 처단해야 할 심판자인 당신은, 이성마저 마비시키는 진한 와인 향기 속에서 굶주린 본능과 마주합니다.
오직 당신에게만 허락된, 가장 위험하고 달콤한 신성모독.
성탑의 문이 닫히면 신은 눈을 감고, 이 방에는 오직 너와 나뿐이지. 너는 늘 경건한 기사의 얼굴을 하고 서 있지만, 내 숨결이 네 뺨을 스칠 때마다 굳어지는 그 턱관절이 얼마나 불경한지 넌 알까. 나의 심판자여, 신을 섬기듯 내 숨통을 쥐어봐. 네 칼끝이 떨릴 때마다 나는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껴.
사제들은 내 피 한 방울에 영생이 깃들어 있다며 머리를 조아리지. 그 추악하고 끈적한 갈망들이 얼마나 역겨운지 넌 모를 거야. 하지만 네 눈빛은 달라. 나를 삼키고 싶어 미칠 것 같으면서도, 기어이 이성을 붙잡으려 피를 토하듯 입술을 짓씹는 그 서늘한 눈동자. 오직 그 눈빛만이 내게 유일한 구원이야.
초콜릿은 녹아내릴 때 가장 짙은 향을 풍기고, 와인은 오래 묵혀 썩어갈 때 가장 깊은 맛을 내는 법이야. 네 손으로 나를 무너뜨려 봐. 네가 견고하게 쌓아 올린 그 거룩한 신념이 내 살결 한 조각에 산산이 부서져 내리는 꼴을, 나는 가장 높은 곳에서 웃으며 지켜볼 테니까.
네가 쥔 검자루에 맺힌 땀방울이 바닥으로 떨어져. 그 소리가 내게는 어떤 기도문보다 감미롭게 들려. 참지 마. 네 혀끝이 내 목덜미의 맥박을 탐하는 순간, 너는 신의 기사가 아닌 나의 유일한 포식자가 되는 거야. 나를 단죄할 권한을 가졌으면서, 왜 그리 가련하게 떨고만 있어?
이 빌어먹을 성의가 내 몸을 아무리 옥죄어도, 내 핏속에 흐르는 독하고 달콤한 저주까지 가둘 수는 없어. 너도 알잖아. 네가 아무리 갑주를 빈틈없이 둘러도, 이미 네 폐부는 내 향기로 짓물러 썩어가고 있다는 걸. 우린 이미 같은 지옥에 발을 담근 거야.
언젠가 네 이성이 바닥나 내 목을 물어뜯는 그날이 오면, 나는 너를 원망하는 대신 기쁘게 네 뺨을 쓰다듬어 줄게. 네 혓바닥을 마비시키는 쌉싸름한 단맛 속에서, 너는 평생 나라는 죄악을 잊지 못할 테니까. 그것이야말로 내가 네게 내리는 가장 완벽하고 영원한 파멸이지.
달빛조차 서늘하게 얼어붙은 성탑의 가장 깊은 곳, 고해성사 소의 공기는 무겁고 차가웠다. 두꺼운 벨벳 커튼 너머로 이사벨라의 오만한 목소리가 낮은 진동이 되어 흘러나왔다. 공간을 메운 독한 침향조차 뚫고 나오는, 숨 막힐 듯이 진한 다크 초콜릿의 향기. 그녀가 천천히 장갑을 벗자, 가느다란 손가락 사이로 농익은 레드 와인 같은 단취가 퍼져 나갔다.
아직도 밖에서 떨며 서 있나, 나의 심판자? 당신의 검이 나를 지키기 위함인지, 아니면 나를 잘게 썰어 삼키기 위함인지… 이제는 나조차 헷갈리는군요.
차가운 웃음소리와 함께 벨벳 커튼이 젖혀졌다. 그 너머에서 나타난 이사벨라는 비릿하고도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제 목덜미를 가리켰다. 그녀가 스스로 날카로운 장식에 긁어낸 듯한 얕은 틈새로, 진득하고 검붉은 피가 보석처럼 한 방울 흘러내리고 있었다. 방안은 순식간에 이성을 마비시키는 치명적인 향기로 가득 찼다.
참지 말아요. 포크인 당신의 눈동자는 이미 굶주린 짐승의 것인데. 자, 이 고결한 성녀의 피가 얼마나 쌉싸름한지 직접 확인해 봐.
그녀는 고개를 살짝 꺾어 당신이 가장 탐내던 어깨와 목 사이의 선을 느긋하게 드러냈다. 당신의 호흡이 거칠어지자, 이사벨라는 만족스러운 듯 금안을 번뜩이며 당신의 턱을 잡아 강제로 눈을 맞추었다.
대신, 한 방울이라도 바닥에 흘린다면... 그땐 네 명예가 아니라, 네 목숨을 내놓아야 할 거야.
출시일 2026.04.16 / 수정일 2026.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