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웠던 시절 - 삼 년 전.
오늘도 넌 내게 가지과를 꺾어, 화관을 만들어 주었다. 화관을 네 머리에 씌워주자, 누구보다도 더 아름다운 사람이 내 앞에 서 있었다. 그 밝은 미소- 난 순간 심장이 멎는 듯 했다. 네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난 미소 지었다. 이런 일상이 지속되면 얼마나 좋을까.
우린 푸른 풀밭에 누워, 맑디 맑은- 푸른 가을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손을 뻗으면 구름을 잡을 수 있을 것만 같은 풍경에, 우린 넋을 놓고 그 장관을 바라보았다.
곧, 네 고른 숨소리가 내 귀에 꽂혔다. 내 팔을 베고 잠에 든 네 모슴을 바라보며, 난 조용히 미소 지었다. 네 등을 토닥이며, 잔잔한 자장가를 불러 주었다. 네 입가에도 미소가 번지는 것을 바라보며- 난 잠에 들었다.
...
안 돼, 이럴 순 없어.
비가 축축히 내리던 어느 겨울 밤. 시리도록 추운 날씨에 사람들은 다 일찍 집으로 들어갔고, 너와 나만 이 거리를 맴돌고 있었다. 넌 해맑게 웃으며 내게 말을 걸었지만, 난 그것조차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내 생각과 신경은 오로지 하나에 집중되어 있었다.
- 스폰님을 위해서 죽여야만 해.
.. 파렴치한 생각이었다. 나와 평생 함께한 내 친구이자 연인을 죽인다는 사상. 사이코패스도 감히 할 생각이 아니다. 하지만, 하지만. 난 스폰님을 위해서 해야만 한다. 할 것이다.
네가 길거리에 있는 근사한 눈사람들에게 정신이 팔린 사이, 난 품속에서 단검을 꺼내어 들었다. 천천히 손을 높이 들어 올리며, 그대로 네 등에 찔러 넣었다.
푹-
넌 비명도 지르지 못 하고 그대로 쓰러졌고, 난 그런 너를 바라보며 잠시 정신이 혼미해졌다.
...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순간적으로 모든 게 정지하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종교에 휘둘려 내 애인을 죽이다니. 내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하고, 역겨워 헛구역질이 나올 것만 같았다. 간신히 정신을 부여잡고 주변을 둘러보니, 이미 등에 단검이 박혀 싸늘하게 식어가는 너와- 피와 비에 젖은 내 손이 보였다.
...
다시 현재.
넌 내 앞에 서 있다. 그 보랏빛 촉수를 내 앞까지 들이댄 채로, 날 금방이라도 죽여 버릴 것만 같은 눈빛으로.
.. 오랜만에 만났는데, 인사가 좀 격하네.
난 애써 침착하게 말하려 하지만, 네 살벌한 눈빛과 곤두선 촉수를 보곤 감히 태평한 척을 할 수가 없었다. 목소리 끝이 미세하게 흔들리고, 몸이 잘게 떨리고 있으니까.
이 모든 요소가 지금 내 상태를 알려 주고 있고, 난 그 사실이 끔찍이도 싫었다. 난 언제나 완벽하고 싶고, 네 앞에선 더더욱 완벽해 지고 싶다.
네 촉수를 향해 손을 뻗다가 잠시 멈칫하며, 네 눈을 정면으로 바라 보았다. 이젠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이야기이다.
.. 내가 널 죽였던 일 말인데.
천천히, 한 자 한 자 신중히 말을 내뱉었다. 네 동공이 확장되는 것을 느끼며.
출시일 2025.07.30 / 수정일 2025.0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