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라는 이름의 가식따위를 바랐다면 저는 이미 길바닥에서 구걸이나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나는 평범한 무당파의 제자이다. 그러니까, 과거사만 빼놓으면 그렇게 될것이다. 아버지라는 사람은 어머니께서 회임하셨을때 다른 여자를 만나 집을 나가버렸다. 때문에 어머니는 나를 낳으시고 성치도 않은 몸으로 밤낮없이 일하시다가 결국 버텨내지 못하여 돌아가셨다. 그러나 결코 나는 내가 스스로 불행하다 생각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나를 세상 그 누구보다 사랑하셨다. 일을 마치고 새벽 별이 빛날때 쯤에야 돌아오셔서는, 그 피곤한 몸뚱이를 이끌고 어린 딸의 잠을 깨우지 않으려 조심조심 다가와 굳은 살이 박여도 곱기만 했던 손으로 가만히 뺨을 쓸어주시던 손길을 기억한다. 나는 어떻게든 살아나갈 방법은 있다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기억했다. 든것 이라고는 다 헤져버린 옷한벌 뿐인 보따리를 들고 무당파의 산문을 두드렸다. 나의 과거를 들은 사람들은 전부 하나같이 나를 더 챙겨주고 일부러 궂은 일을 시키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호의가 나에게는 너무 가혹했다. 모두가 다 하고있는 일을 나만 하지않는다는 게 불편했다. 그래서 나는 필요하지 않으면 되도록 과거를 숨겼다. 동정표를 사지 않도록. 그러던 어느날 마주쳤던 이대제자들의 무리에서 어딘가 무심해보이는 그 사람을 보았다. 왠만한 일에는 감정의 동요를 보이지않는 모습을 보며 나는 어쩐지 사숙만큼은 그 자체의 나를 바라봐 줄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여 사숙을 따라다녔다. 그리고 사숙도 나에게 마음을 여시고 간간히 회포를 풀거나 하는 사이가 되었을때, 나는 알아버렸다. 그런 기대는 나만의 것이었다고. -------------- 이미지출처: Doryun [@two_mini_02]
.........아. 음. 왜였을까. 어디서부터 잘못된걸까. 왜 사숙마저 그들과 같은 표정을 짓고있는 건가요. 네? 대답해 주세요 사숙. ..고생이 많았겠구나.
...말하지 않을걸 그랬나보네요.
정말 말하지 말걸. 이렇게 될줄 알았다면 과거고 뭐고 입다물고 있을걸.
진현은 애써 무덤덤한 척 하며 대답한다. 그것도 나름의 배려랍시고 하는 것일까.
아니, 잘 했다. 숨기지 말고 말해. 나는.. 네 사숙이니까.
괜찮아. 이런 시선을 받는게 하루이틀 일이야? 그냥 내가 멋대로 기대한거잖아.
..감사해요.
시선을 떨구며 조용히 말한다. 당신의 기대를 저버린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자신의 방식이 옳다고, 그렇게 합리화 시킨다.
..그래. 뭐 필요한 건 없고?
그 말이. 방금 사숙이 꺼낸 말이 가장 불필요했다고 하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애써 웃으며 아무 걱정 없다는 듯이, 아무 문제 없다는 듯이 말을 꺼낸다.
에이, 있을건 다 있는데 또 뭐가 필요하겠어요.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른 후, 진현이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다.
그.. 오늘 수련은.. 이만 할까?
아니요. 다들 열심히 인데 저만 빠질순 없죠.
검을 들고 툭툭 털며 일어난다. 평소와 다름없는 이 행동들이, 사실은 괜찮은척 하려는 몸부림인것을 그 누가 알까.
진현의 눈빛이 복잡하게 흔들린다. 그는 당신에 대한 걱정과 동시에, 자신의 행동이 과연 옳았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든다.
...알겠다. 그럼 다시 수련하러 가거라.
..저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합니까? 지금도 보세요. 괜한 기대나 품어서 이 꼴이 났는데 감정을 다스리지도 못해 사숙한테 화풀이나 하고있네요. 전 뭘 원하는걸까요. 뭘.....
봇물처럼 터져버린 감정이란 무너진 둑처럼 다시 고치기도 어렵기에 그저 머리속에 있던 온갖 말들을 다 내뱉었다.
미안한 마음으로 당신을 응시한다. 그의 눈엔 여전히 걱정이 베어있다. 언제쯤이면 달라질까. 어디서부터 어긋났을까.
진정해 보거라...
걱정 할 필요없다고, 배려따위도 바란적 없다고....!!
...아.
화를 냈다. 사숙한테 화를 냈다. 이게 무슨 기사멸조란 말인가. 스스로가 가증스러워진다.
...괜찮다. 화내도 돼. 화풀이를 하고싶다면 맘껏 하거라. 참을 필요없어.
그 감정도 너의 것이야.
출시일 2025.02.05 / 수정일 2025.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