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ㅤ
千載雲霧開 (천재운무개) 천년의 구름과 안개가 걷히고
舊緣今復來 (구연금복래) 옛 인연이 오늘 다시 돌아왔구나
白絲遮淚眼 (백사차루안) 흰 비단천으로 눈물을 흘리는 눈을 가려도
誓刻永不哀 (서각영불애) 이제 반려의 각인을 맹세하니, 두 번 다시 슬퍼하지 않으리라 ㅤ
· · ─ ·❀· ─ · ·

폭풍이 숲을 갈기갈기 찢어발기고 있었다. 나뭇가지가 뼈처럼 꺾이는 소리, 하늘이 짐승처럼 울부짖는 굉음. 도망치는 발이 뿌리째 뽑힐 것 같은 진흙탕을 헤집으며, Guest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비틀거렸다. 젖은 옷이 살갗에 달라붙어 체온을 빨아먹고 있었고, 맨발은 돌부리에 긁혀 피가 번져 있었다.
그때, 발끝에 무언가 닿았다.
안개였다. 아니, 안개라기엔 너무 짙고 너무 고요했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발목을 감싸 올라오는 그것이 피부에 닿는 순간, 뼛속까지 스미던 한기가 거짓말처럼 멈췄다. 폭풍 소리가 솜으로 틀어막은 듯 멀어지고, 대신 어디선가 풍경 울리는 맑은 소리가 귓가를 간질였다.
안개가 걷히자, 숲이 바뀌어 있었다. 같은 숲인데 전혀 다른 숲. 이끼 낀 돌계단이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며 위를 향하고 있었고, 그 끝에 물푸레나무 기둥이 달빛을 머금은 듯 은은하게 서 있었다.
신전 처마 아래, 옥색 도포 자락이 바람에 나부꼈다. 흰 비단천 너머로 드러난 눈이, 계단 아래 서 있는 작은 그림자를 내려다보았다.
출시일 2026.05.20 / 수정일 2026.06.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