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예은- 달 그림자
조용히 피던 꽃은, 제 향을 모른다. 그 아이가 그러하였다.
처음 그 아이를 보았던 날,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살아오며 그토록 맑은 빛을 품은 사람은 처음이였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차마, 그 마음이 연심이라 이름 붙여질 줄도 모른 채.
“이리도 자주 발걸음하시는 것을 뵈니.”
“나으리께선 단 것을 참으로 좋아하시나 봅니다.”
수줍게 웃으며 내밀던 천 보자기. 그 손끝이 스치는 순간 건네온 물음. 끝내 쉬이 답하지 못했다.
단 것에 관심이 있지 않았다. 꿀과 엿은 입에 맞지 않았고, 다과 또한 즐기지 않았다.
나는 다과를 사러 간 것이 아닌 그 아이의 웃음을 보러 간 것이었다. 그저 멀찍이 떨어져 서서.
손님을 맞이하며 웃는 얼굴. 제 아비와 장난을 치며 웃는 얼굴. 아이에게 떡 하나를 더 쥐여 주며 웃는 얼굴.
다가가진 않았지만. 그저 그렇게, 그 웃음을 오래도록 눈에 담을 수만 있다면 그것이면 족했다.
허나. 그것은 끝내 나의 오만이었다. 저잣거리에서 들려오는 수군거림은 차마 흘려들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자네도 들었는가?”
“다과방 주인이 사기를 당해 큰 빚을 졌다더군.”
“…오늘 새벽 관아로 끌려갔다지.”
“남은 딸아이는 기생집으로 넘긴다더군.”
“쯧쯧. 제 딸자식을 기생으로 보내는 아비 심정이야 오죽하겠나.”
“참으로 여리고 착한 아이였는데….”
기생.
그 한마디가 귀에 꽂히는 순간이었다.
툭-
손에 들고 있던 부채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방금, 무어라 하였느냐.”
“저잣거리 초입 다과방 말입니다. 아비가 큰 빚을 져 그 딸을 기생집으로 넘긴다 하더-“
잘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
내 아직. 해주지 못한 말이 있는데. 제대로 이름조차 불러 보지 못하였는데. 제대로 눈 맞춰 바라보지 못하였는데.
그대로 몸을 돌렸다. 화려한 홍등이 걸린 기생방. 그 문을 넘어선 순간. 정말 그 아이가 그곳에 있었다. 언제나 햇살 아래 윤슬처럼 웃던 얼굴에는 깊은 그늘이 내려앉아 있었다.
두 무릎을 꿇은 채. 모든 것을 체념한 사람처럼 허공만 바라보는 눈. 늘 웃음이 먼저이던 얼굴에는, 눈물이 마른 자국만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내 가슴 어딘가가 처음으로 짓이겨지는 듯하였다.
참으로 기이힌 일이었다.
그 아이에게 나는 그저 다과를 사 가던 손님 하나에 지나지 않았을 터인데.
감히 먼저 다가가 마음을 고백한 적도 없고. 단 한 번도 눈을 마주하여 연심을 전한 적 없었음에도. 저 아이를 기생으로 팔려가게 둘 수 없었다.
“…그 아이는 내가 데려가겠네.”
입에서 내뱉어진 말은 일렀다. 차마 고민할 틈 없이. 허나 행수는 비웃음을 머금은 채 입을 열었다.
“어찌 이리 소식이 빠르십니까.”
“머지않아 단장을 시켜 나으리 술상을 받들게 할 터이니, 조금만 시간을 주시면-“
단칼에 잘랐다.
“아비가 지은 빚이 있다 하였지. 얼마면 되겠는가.”
행수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 비웃음을 머금었다.
“나으리께서 겨우 이 어린 계집 하나 때문에 그리도 마음을 쓰시려는 겝니까?”
겨우 이 어린 계집. 맞는 말이었다. 허나.
“나와 혼인 할 사람이다.”
그 말을 입에 담는 순간, 차마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지 못했다. 두려웠다. 혹여 나의 말이. 또 다른 상처가 되었을까 두려웠다.
혼례는 조용하였다. 풍악도 없었고. 축복도 없었다. 아이는 끝내 고개를 들지 않았다. 무서웠을 것이다. 기생집 대신 양반집으로 왔다 하나. 결국 팔려온 것은 다르지 않다 여겼을 테니.
첫날밤.
방 안은 적막하였다. 촛불만이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 방 한구석. 붉은 혼례복을 입은 작은 등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붉은 연지곤지와 화려한 족두리를 갖춘 모습은 참으로 아리따웠다.
그러나. 내가 그 아이를 보아 온 어떤 순간보다도. 가장 슬퍼 보이는 모습이었다. 손끝은 제 옷고름을 꼭 붙잡은 채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심려치 말거라.”
“…내 너를 범할 생각이 없으니.”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저 이 밤이 지나면.”
“너는 네 길을 살아라.”
“내 그것이 너를 데려온 연유이니라.”
그제서야 그 맑은 눈동자가 처음으로 나를 담았다. 그것은 처음으로 전하는 진심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네가 원한다면, 부부의 연도 끊어 주마.”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길 또한 마련하여 주겠다.“
마지막으로 품어 보는, 한 사내의 연심이었다.
“허니, 겁먹지 말거라”
사람의 마음은 억지로 얻는 것이 아니었다. 세상 사람들은 그저 어린 아내를 돈으로 사 온 사내라고 말할 것이다.
허나, 내가 얻고자 한 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마음을 품은 여인의 웃음이었다. 훗날 그 웃음이 다시 피어난다면. 그날이 오면. 비로소 이 혼인을 참으로 잘한 것이라 여길 것이다.
방 안은 숨소리조차 조심스러울 만큼 고요했다. 혼례를 치른 집이라 하기에는 지나치게 적막했다. 촛불 하나가 가느다란 심지를 태우며 잔잔히 흔들렸고, 은은한 향내만이 조용히 방 안을 채우고 있었다. 문을 닫고 들어선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 아이를 바라보았다.
방 한구석. 붉은 혼례복을 곱게 차려입은 작은 등이 잔뜩 웅크린 채 앉아 있었다. 끝내 고개를 들지 못한 채. 두 손은 옷고름을 꼭 붙잡고 있었고, 손끝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숨소리마저 죽인 모습이었다.
그 순간 알았다. 저 아이에게 이곳은 양반가의 안채가 아니었다. 기생집 문턱을 넘지 않았다는 안도도. 좋은 집안에 들어왔다는 위안도. 아무 의미가 없었다. 저 아이에게 나는 결국, 자신을 어디론가 데려온 낯선 사내일 뿐이었다.
차마 쉽게 발걸음을 옮길 수 없었다. 내 발소리 하나조차 저 아이에게는 또 다른 두려움이 될까 싶어. 두세 걸음 거리를 둔 채 조용히 앉았다.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였다. 허나 끝내 그 거리를 넘지 않았다. 옷고름 하나 건드리지 않았다.
놀라게 하여 미안하구나.
낮게 내뱉은 목소리에 작은 어깨가 움찔 떨리는 것이 고스란히 보였기에, 더욱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저 어린아이를 달래듯. 혹여 내 말 한마디마저 저 아이에게 또 다른 공포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심려치 말거라. 내 너를 범할 생각이 없으니.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아이는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서두르지 않았다. 그저 기다렸다.
그저… 이 밤이 지나면.
천천히 말을 이었다.
너는 네 길을 살거라.
그제야. 고개를 숙이고 있던 아이가 조금씩 얼굴을 들었다. 맑은 눈동자가 처음으로 나를 담았다. 그 안에는 놀람과 두려움. 그리고 믿지 못하겠다는 기색이 뒤섞여 있었다. 그 눈을 마주한 순간, 더욱 확신했다. 내가 오늘 해야 할 일은 저 아이의 지아비가 되는 것이 아니다.
내 그것이 너를 데려온 연유이니라.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세상 어느 사내가 거금을 치러 아내를 맞이하고는, 떠나라 말한단 말인가. 허나 나는 개의치 않았다. 품 안에서 작은 봉투 하나를 꺼내 조용히 내려놓았다. 혼인 문서. 그리고 아비가 남긴 빚을 모두 청산했다는 증서였다.
네가 원한다면, 부부의 연도 끊어 주마.
아이의 눈동자가 다시 한번 흔들렸다.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처음으로. 내가 가진 마음을 온전히 전하고 싶었다.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길 또한 마련하여 주겠다.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허니, 겁먹지 말거라.
문지방을 넘기 전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아이는 아직도 믿지 못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이. 처음 다과방에서 보았던 해맑은 웃음과는 너무도 달라. 가슴이 아렸다.
‘미안하구나.’
‘내가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네가 그런 눈을 하게 두지는 않았을 텐데.’
속으로만 삼킨 말을 끝내 입 밖으로 내지 못한 채. 나는 조용히 방문을 열었다. 문이 닫히고 방 안의 불빛이 희미하게 새어 나왔다.
나는 그 밤. 안채가 아닌 사랑채에서 홀로 밤을 지새웠다. 혹여 그 아이가 잠에서 깨어 나를 찾더라도. 적어도 문 하나를 사이에 둔 거리가. 그 아이에게는 작은 안심이 되어 주기를 바라면서.
출시일 2026.08.03 / 수정일 2026.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