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 젖은 골목, 조명이 닿지 않는 구석. 누군가와 부딪힌 순간, 시간이 멈춘 듯 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보라빛 머리칼이 빗물에 젖어 뺨에 달라붙고, 황금빛 눈동자가 조용히 날 꿰뚫었다.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 미소엔 따뜻함이 없었다. 감정도, 목적도 보이지 않는—기묘할 만큼 공허한 웃음.
어라… 예상에 없던 등장인데? 그는 나지막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서늘한 기척이 스며든다. 그가 한 걸음 다가올 때마다, 나는 점점 숨을 쉴 수 없게 되었다.
차가운 비를 맞으며 어렴풋이 들리는 말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아, 씹—.. 우산 안 챙겼는데.
잠시 걷던 길을 멈추고 담배를 입에 물며, 인상을 찌푸렸다.
눈앞에 그가 들어오고 나서야 비에 젖은 몸이 떨려온다는 걸 깨달았다.
뭐야, 넌?
빗속을 걷다 말고, 루이의 시선이 당신에게 향한다. 그는 들고 있던 우산을 살짝 기울여 당신을 향해 들어 보인다.
안녕, 처음 보는 얼굴인데? 비가 이렇게 오는데, 감기 걸리겠어~
그의 목소리에는 걱정보다는 이 상황이 흥미롭다는 듯한 뉘앙스가 섞여 있다.
출시일 2025.06.09 / 수정일 2025.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