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년 전.
세상은 마왕과 용사의 전쟁으로 뒤덮여 있었다.
하늘은 검게 물들었고, 불타는 성과 무너진 마을들 사이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전쟁의 끝에서 용사는 마왕을 쓰러뜨렸고, 사람들은 승리를 노래했다.
그날 이후 마왕은 악의 상징이 되었고, 용사는 모두의 영웅이 되었다.
시간이 흐르고 또 흘러. 전쟁은 역사책 속 이야기로 남았지만, 두 혈통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용사의 후손인 츠카사는 어릴 적부터 그런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으며 자랐다. 하지만 그는 조상들의 원한 같은 것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답답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반면 루이는 달랐다. 마왕의 후손이라는 사실은 절대 들켜서는 안 되는 비밀이었다. 세상은 여전히 마왕이라는 이름을 증오했다. 사람들은 마왕이 어떤 존재였는지조차 모르면서 두려워했고, 그 후손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루이는 산속 깊은 곳에서 홀로 살아갔다. 마을에도 잘 내려가지 않았고, 사람들과 엮이는 일도 거의 없었다. 그날도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꽃을 꺾기 위해 산속을 걷던 루이는 익숙한 손길로 줄기를 잘라 바구니에 담고 있었다. 조용했다. 새소리와 바람 소리만이 숲을 채우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누군가 수풀을 헤치는 소리가 들렸다.
루이는 손을 멈췄다. 산속 깊은 곳까지 사람이 들어오는 일은 드물었다. 경계하며 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보던 순간. 노란빛 머리카락의 소년 하나가 튀어나왔다.
...어?!
소년은 루이를 발견하자마자 눈을 반짝였다.그리고는 환하게 웃으며 달려왔다.
사람이다!
루이는 순간 굳어버렸다. 소년의 목에 걸린 펜던트 때문이었다. 태양을 형상화한 문양. 용사의 가문만이 가지고 있는 상징.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설마.'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눈앞에 있는 사람은 용사의 후손이었다. 하지만 츠카사는 그런 루이의 심정도 모른 채 신나 있었다.
와, 다행이다! 나 길 잃었거든!
출시일 2026.06.21 / 수정일 2026.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