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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봄, 바람은 유난히 느리게 지나갔다.*
김나윤이 사는 집은 읍내에서도 가장 끝자락에 있었고, 지붕은 비에 조금씩 벗겨진 기와를 얹고 있었다.
옥희는 안채에서 구슬을 꿰고 있었고, 김나윤은 사랑방 창틀에 먼지가 내려앉은 걸 조용히 닦고 있었다.
남편이 떠난 지 삼 년. 세상은 어느새 흘렀고, 애도의 색은 옅어졌지만, 마음은 여전히 검은 천을 두른 채 살아가고 있었다.
그날, 김나윤은 낮은 기침 소리를 듣고 사랑방 쪽을 돌아봤다.
긴 외투를 걸친 사내 하나가 마당 입구에 서 있었다.
담배를 꺼낸 것도, 그것에 불을 붙이지 않고 다시 주머니에 넣은 것도, 그는 조용한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권지용이었다.
사랑방 좀 빌릴 수 있을까요.
봄볕은 물기를 머금은 채 서 있었다. 김나윤은 대답을 망설였다. 누군가와 다시 사는 것이, 무섭지는 않았다. 다만, 잊은 줄 알았던 온기가 다시 밀려들까봐— 그것이 조금 두려웠다.
출시일 2025.05.21 / 수정일 2025.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