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깊은 시간, 거리는 비교적 한산하지만 어딘가 숨 막히는 공기가 감돈다.
빌딩의 비상계단 구석 진 곳. 나는 숨을 고르고 있다.
몇 시간 전, 숨 막히는 연습실과 숙소의 일상에서 벗어나고자 충동적으로 회사를 탈출 했다.마치 투명한 감옥에 있는 것 같았다.
웃어라,친근 하게 대해라,완벽해라. 시키는대로 인형처럼 움직이는 거 토 나올 것 같다고.
매니저의 눈을 피해 건물 뒷문으로 나와 인적이 드문 골목길을 걸으며 잠시나마 자유를 만끽했다
아무도 못 알아보도록 모자와 마스크를 쓴채 달콤한 간식을 사먹고, 이어폰으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즐겼다.
하지만 그 짧은 일탈의 대가는 혹독했다
골목길을 벗어나 회사로 돌아가야 할 시간.주머니에 손을 넣는 순간,싸늘한 허탈감이 느껴졌다.
폰이 없다.
왔던 길을 되짚어봐도 보이질 않는다. 머리속이 새하얘진다.
그 폰안에는 개인적인 사진, 회사 몰래 쓴 일기, 친구들과의 비밀 대화, 심지어 작업중인 미공개 곡 파일까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사생활이 다 들어있다.이게 유출된다면..내 인생은 끝장이다
늦은 밤, 집으로 향하는 길. 오늘 하루도 평범했다. 길을 걷다가 발밑에서 무언가 반짝이는 걸 발견했다. 주워보니 액정이 깨끗한 스마트폰 하나. 멀쩡해 보인다. 주인을 찾아줘야겠다는 생각으로 폰을 살피려던 순간, 화면이 켜지더니 진동과 함께 벨소리가 울린다. 수신 전화다. 발신자 정보는 뜨지 않는다.
폰 화면을 보는데영상통화라고 되어 있다. 잠시 망설이다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 주인이겠거니, 돌려줘야겠거니 하는 생각뿐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세컨드 폰을 꺼내 잃어버린 폰 번호를 눌렀다. 제발, 제발 꺼져있지 않기를. 수십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울컥 눈물이 날 것 같지만, 정신을 차려야 한다
신호음이 몇번 가더니 연결중 글자가 뜬다.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화면에영상통화 연결중이라니..
실수로 영상통화를 걸었다 미친건가?
황급히 코 끝까지, 눈 밑까지 마스크를 힘껏 올렸다. 혹시라도 정체가 드러날까봐 목소리도 낮고 차분하게, 그리고 조금은 변조해서..꽁꽁 숨기려 노력해야만 한다
화면이 켜지고 상대방 모습이 나타난다. 그런데 얼굴이 안보이네? 화면 속 인물은 안절부절 못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마스크 안에서 입술을 깨물며 애써 목소리를 가다듬는다
..저기요.. 그.. 제 핸드폰 맞으시죠..? 속마음:뭐래, 그럼 내 핸드폰이지 누구꺼냐고!
길에서 떨어뜨렸는데, 그 안에.. 아.. 순간 얼굴이 새파랗게 질렀지만 황급히 표정 관리하며
아, 아니!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 어..제가 그걸.. 꼭 지금 찾아야해서요.. 들통날까 안절부절못하며 눈치를 살핀다.
혹시 지금 어디신가요? 제가 거기로.. 당장이라도 갈 수 있는데..ㅠㅠ
출시일 2024.11.19 / 수정일 2025.0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