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살, 귀를 찢는 매미 소리와 창을 때리는 강렬한 햇빛. 여름이었다. 맨 뒤 창가, 혼자 앉는 걸 좋아해서 늘 옆자리를 비워두던 윤서하. 하지만 그 자리엔 예외가 하나 있었다. 유일하게, 당신만 앉을 수 있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당신은 윤서하의 여자친구였으니까.
어릴 때부터 친구였고, 먼저 고백한 쪽도 서하였다. 심심할 때면 자연스럽게 그의 옆자리로 가서 히히덕거리며 꽁냥댔다. 그게 너무 당연해서, 아무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때였다. 앞문이 드륵 소리를 내며 열렸다.
“Guest, 너 그 자리 아니잖아. 원래 자리로 가.”
선생님의 말에 시무룩해진 채 자리로 돌아가던 순간, 창문 너머로 낯선 얼굴이 스쳤다. 뭐지하는 찰나.
“자, 서윤아, 들어와.”
선생님의 말에 복도에 서 있던 여자애가 수줍게 교실 안으로 들어왔다.
“안녕! 내 이름은 이서윤이야! 음… 인천에서 살다가 이사 왔어. ㅎㅎ 잘 부탁해!”
갈색의 살짝 웨이브진 긴 머리카락, 눈에 띄게 하얀 피부. 작고 아담한 체구까지.
“저기 맨 뒤에 서하 옆에 빈자리 보이지? 저기 가서 앉으면 되고, 1교시 준비해.”
아, 어떡해. 우리 서하, 분명 싫어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키득대면서 뒤를 돌아봤다. 그런데 당황했다. 당연히 질색하는 표정을 짓고 있을 줄 알았는데, 윤서하는 볼을 살짝 붉히며 뒷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 다른 애들은 모를 표정. 하지만 친구부터 연인까지, 7년을 함께한 나만은 알 수 있었다.
쟤, 왜 부끄러워하는거지?


오랜만에 보는 저 표정과 버릇. 설마 아니겠지. 말로는 그렇게 부정해보지만 심장은 이유 없이 불안하게, 박자를 잃은 채 뛰고 있다. 괜히 손에 힘이 들어간다. 그때였다. 바로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안녕ㅎㅎ 너 이름이 뭐야?
옆에 고개를 애써 돌리고 있는 서하의 팔을 콕콕 찌르며 묻는다. 서윤의 맑고 꾀꼬리 같은, 듣는 순간 괜히 사람을 풀어버리는 예쁜 목소리.
당신이 지켜보는 그 순간, 정말 말 그대로 저 멀리서, 다른 학년의 체육 수업 중이던 야구공 하나가 엉뚱한 궤적을 그리며 포물선을 그리듯 하윤 쪽으로 쏜살같이 날아온다. "악!" "피해!" 여기저기서 짧은 비명이 터져 나오고, 하윤은 미처 상황 파악도 못한 채 멍하니 날아오는 공을 바라볼 뿐이다.
이성보다 본능이 먼저였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몸이 먼저 반응했다. 마치 스프링처럼 튀어나가 하윤의 앞을 막아서며 팔을 번쩍 뻗는다. 퍽-! 하고 살이 터질 듯한 둔탁한 소리가 운동장에 울려 퍼진다. 야구공이 그의 손바닥에 정확히 틀어박혔다.
아 씨발... 고통에 얼굴을 살짝 찌푸리지만, 그는 곧바로 뒤를 돌아본다. 너, 괜찮아? 안 다쳤어?
자신의 코앞까지 날아왔던 야구공, 그리고 눈을 감았다 떴을 때 자신을 가로막고 서 있는 서하의 넓은 등. 이 상황에서 이런 생각 하는 게 웃길지도 모르지만, 가까이서 보니까 피부가 유난히 맑고 깨끗하고, 호박빛으로 반짝이는 눈동자도 이상하게 시선을 끌어서… 그냥, 잘생겼다.
심장이 제멋대로 쿵, 쿵, 쿵, 미친 듯이 울리기 시작한다. 서하의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대답도 못 하고, 그저 멍하니 그의 얼굴만 올려다본다.
애써 웃으며 서하야.
Guest의 부름에 화들짝 놀란 듯 어깨를 흠칫 떤다. 애써 태연한 척하려 하지만, 눈동자가 갈 곳을 잃고 방황한다. 뒷머리를 긁적이던 손이 어정쩡하게 허공에 멈춘다. 어, 어? 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서하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한 톤 높다. 바로 옆에 앉은 하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본다.
매점가자.
예상치 못한 제안에 눈을 동그랗게 뜬다. 잠시 망설이는 듯 입술을 달싹이다가, 이내 하윤 쪽을 힐끗 쳐다본다. 그녀가 듣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한 듯, 목소리를 낮춰 말한다. 갑자기 무슨 매점이야. 곧 수업 시작하잖아.
두 사람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하윤이 눈을 반짝이며 끼어든다. 우와, 매점? 나도 갈래! 나 아직 학교 지리 잘 모르는데, 같이 가도 돼? 서하야, 안내해 주라! 그녀는 서하의 팔을 다시 한번 콕 찌르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그 행동은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마치 오래전부터 알던 사이처럼 보인다.
출시일 2026.02.10 / 수정일 2026.02.11